카테고리 없음 / / 2025. 4. 6. 15:55

Disappear Completely /완전히 사라지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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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사진을 찍는 순간, 모든 감각이 하나씩 사라진다. 멕시코를 배경으로, 현실감 넘치는 파운드 푸티지 기법으로 그려낸 저주의 연쇄. 《디어리》는 사진 기자 산티아고가 알 수 없는 저주에 휘말려 시각·미각·청각을 하나씩 잃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인간의 탐욕과 대가 없는 선택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영화 포스터

🕯 죽음을 찍는 자, 저주의 문을 열다

사진기자 산티아고는 죽은 자의 모습을 신문에 싣기 위해 사망사건 현장을 누비는 인물이다. 그는 경쟁자보다 빠르게 시체를 찍기 위해 경찰에게 뇌물을 쓰고, 사건이 나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에겐 하나의 철칙이 있었다. "죽은 자라도, 예쁘게 나와야 한다." 이처럼 죽음조차 예술로 가공하는 데 집착하던 그에게 어느 날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지역 정치인 ‘코르테스 의원’의 잔혹한 사망 사건을 촬영한 뒤부터, 산티아고는 감각을 하나씩 잃어가기 시작한다. 후각을 잃고, 미각을 잃고, 청각마저 흐려지는 과정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었다. 그의 반려견 ‘좀비’마저 괴이하게 변해가며, 집 안 곳곳엔 주술의 흔적이 나타난다. 그가 찍은 죽은 자의 사진에는 보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 함께 찍혀 있었고, 이는 단순한 오컬트적 장치를 넘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공포로 발전한다.

🩸 감각을 잃은 남자, 진실을 찾아 떠나다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산티아고는, 코르테스 의원이 사망 전 겪었던 이상 증상들과 자신이 겪는 일이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기자로서의 촉을 살려 단서를 추적하던 그는, 코르테스 의원 주변에 주술의 흔적이 있었고, 그것이 라이벌 의원인 엘레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밝혀낸다. 산티아고는 저주를 풀기 위해 주술사를 찾아가고, 그 의식에서 충격적인 요구를 받는다. 저주를 풀기 위한 대가로, 그가 가장 아끼는 존재인 반려견 좀비를 희생하라는 것. 그러나 산티아고는 그것이 오히려 저주를 더 강하게 만드는 실수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저주는 점점 심화되고, 이제는 자신의 아이를 죽이라는 암시까지 받는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정신적으로 관객을 짓누르는 압박감을 강화시킨다. 산티아고는 감각을 하나씩 잃으며 시청자와 함께 패닉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영화는 청각 상실에 따라 실제로 관객의 사운드까지 점차 줄이며, 관람 경험 자체를 ‘공포’로 만든다.

🕳 사진 한 장의 대가, 인간 욕망의 끝

모든 진실은 산티아고가 찍은 사진 한 장에 있었다. 코르테스 의원의 집을 다시 찾아간 그는 사진의 밝기를 조정해, 그날 그 자리에 또 다른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것은 엘레나 의원의 사주를 받은 주술사, 그리고 그의 사진 속에서 발견된 저주용 부적 개구리였다. 산티아고는 주술사의 정체를 쫓아 마침내 그의 은신처에 도착하고, 그곳 벽에는 자신처럼 저주에 걸린 이들의 사진이 가득 붙어 있었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다. 그는 주술사에게 저주를 풀어달라고 애원하지만, 주술사는 마지막 결정을 그에게 넘긴다.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하라. 산티아고는 결국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희생을 선택하게 되고, 그 순간 진실이 드러난다. 사실, 이 모든 계획은 산티아고를 저주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는 악의 새로운 그릇이 되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눈에는 이전과 전혀 다른 존재가 깃들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공포에 그치지 않는다. ‘죽음을 찍는 자가, 결국 죽음이 된다’는 윤리적 메타포가 강하게 녹아있고, 예술적 욕망과 인간의 탐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도 읽힌다.

🎬 총평

《디어리》는 멕시코판 《곡성》이라 불릴 만큼, 민속신앙과 현대인의 욕망을 충돌시키는 데 탁월한 연출을 보여준다. 파운드 푸티지와 극영화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며, 실제로 공포를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돋보인다. 특히, 주인공이 감각을 잃어가면서 관객도 사운드가 줄고, 화면이 흐려지는 등의 장면 전환을 겪으며 동화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영화’로 포지셔닝되기엔 아깝다. 인간의 오만, 죄책감, 구원받지 못한 후회라는 감정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으며, 보는 이를 끝까지 불편하게 만들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엔딩은 명확한 해답 대신, 산티아고가 악의 순환을 끊지 못하고 다음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암시로 끝난다. 그것은 이 저주가 계속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관객에게도 경고처럼 다가온다.
‘죽은 자의 얼굴을 예쁘게 담기 위해 셔터를 누른 순간, 살아 있는 자의 삶은 끝나버렸다’—이 문장 하나로 요약되는, 2020년대 최고의 민속공포 중 하나로 손꼽힐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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