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5. 4. 15. 12:41

Adoration/ 열렬한 사랑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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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결코 가볍게 쓰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스릴러이자 심리 드라마입니다. 16mm 카메라로 거칠게 담아낸 이 영화는 세상과 단절된 소년과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한 소녀의 동화 같지만 잔혹한 여정을 따라가며, 순수와 광기의 경계를 파고듭니다. '미쳐버린 사랑'을 그린 듯한 이 작품은 현실적이고 불편한 시선으로 첫사랑의 폭력성과 맹목성을 들여다봅니다. 감성적이면서도 잔인한 전개, 예측할 수 없는 소녀 글로리아의 모습은 관객을 끝까지 긴장하게 만들죠. 전형적인 로맨스를 거부하는 이 작품은 보는 내내 불편하고,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감성의 이름으로 포장된 광기, 그 끝은 어디일까요?

영화 포스터

1. 정신병원 옆에서 살아가는 소년, 운명처럼 나타난 글로리아

《열렬한 사랑》은 한적한 정신병원 옆 건물에 살고 있는 소년 '폴'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의 외롭고 단절된 삶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간호사인 엄마와 함께 병원 근처에서 살아가는 폴은 친구 하나 없이, 다친 새들을 보살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소년입니다. 그는 세상과 단절된 듯한 삶 속에서 고요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고, 어딘가 조금씩 어긋난 감수성 속에 평범함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듯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삶에 폭풍처럼 등장한 존재가 바로 ‘글로리아’였습니다. 그녀는 병원에서 도망친 환자였고, 눈빛 하나로 세상을 도발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는 소녀였습니다.

글로리아는 자신이 ‘정상’이라 주장하며 병원에 억류된 것을 부당하게 여기는 인물입니다. 폴은 그녀에게 처음부터 강한 호기심과 끌림을 느꼈고, 엄마가 정한 “환자와 접촉 금지”라는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그녀와 교류하게 됩니다. 둘의 관계는 전형적인 10대 청춘 로맨스처럼 시작되지만, 점점 묘한 불균형과 뒤틀림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글로리아는 어딘가 모르게 어두운 구석이 있고, 행동은 예측 불가능하며 때로는 잔혹성도 느껴집니다. 반면 폴은 그녀의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며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죠. 이런 이질적인 두 캐릭터의 교차는 관객에게 처음부터 뭔가 불안한 예감을 안겨줍니다.

그러던 중 폴의 유일한 친구인 새 '로비'가 사라지고, 뒤늦게 발견된 로비는 차가운 죽음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폴에게는 단순한 새가 아닌 유일한 교감이자 친구였던 존재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이 사건은 그가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 여정에 글로리아를 동행시키며, 본격적인 둘의 탈출기가 시작되죠. 하지만 이 여정은 단순한 도망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을 내세운 광기와 현실 사이의 끝없는 충돌이라는 점에서 한층 더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2. 사랑의 탈을 쓴 광기, 소녀의 이면이 드러나다

폴과 글로리아의 도망은 처음엔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세상의 규칙에서 벗어난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낯선 곳을 헤매고, 잠시나마 행복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곧 그 자유의 뒷면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죠. 수색대가 코앞까지 들이닥치고, 그 혼란 속에서 글로리아는 폴의 허벅지를 칼로 찌릅니다. 그녀의 불안정함은 점차 분노로, 그리고 폭력으로 번지며 관객에게 이 소녀가 ‘진짜로 위험한 존재’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줍니다.

이후 만난 한 부부는 둘에게 안식처를 제공하지만, 글로리아는 여기서조차 불안을 느끼며 부부를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냅니다. 남매라고 속이고, 불쌍한 사연을 들려주며 동정심을 유도하는 그녀의 모습은 결코 평범한 소녀의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보여주는 호의조차 그녀에게는 위협처럼 다가왔고, 글로리아는 이들을 해치려는 충동을 숨기지 않죠. 여기서부터 영화는 명확히 선을 긋습니다. 이 소녀는 보호받아야 할 순수함이 아닌, 조용한 살기를 가진 존재이며, 폴 역시 그녀와의 관계에서 한없이 무력한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서서히 드러냅니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글로리아가 닭의 발목에 붙은 숫자를 보고 발작적으로 흥분하는 대목입니다. 평범한 것에도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주변인에게 위협을 가하는 그녀의 모습은 명백한 정신 이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소년 폴은 그럼에도 글로리아를 믿고, 그녀의 말에 설득당하며 계속 도주를 이어가지만, 관객은 그녀가 언제 또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지 몰라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한 소녀의 파괴적인 사랑이 어떻게 무고한 소년의 일상을 삼켜버리는지 섬뜩하게 보여줍니다.

3. 끝내 집으로 돌아온 소년, 남겨진 감정의 잔해들

결국 폴과 글로리아는 또 한 번 새로운 거처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닭의 주인이자, 채소밭을 가꾸는 중년 남성 '흰켈'입니다. 그는 글로리아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단박에 간파하고, 폴만이라도 구하고자 설득을 시작합니다. 여느 어른과는 달리 압박이 아닌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소통하는 흰켈의 태도는 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결국 그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글로리아는 그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죠.

영화는 초반의 순수한 사랑이 어떻게 극단으로 치닫는지를 고요한 리듬 속에 잔혹하게 담아냅니다. 마지막 장면, 처음의 비극적인 장면으로 돌아오며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뒤 맑게 갠 하늘 아래, 폴은 홀로 남겨지고, 이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싸던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 듯한 슬픈 평온함을 보여줍니다. 이 결말은 누군가에겐 허무하고, 누군가에겐 안도감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분명한 건 사랑이라는 이름의 맹목성과 위험성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감독은 이 위태로운 여정을 16mm 카메라 특유의 투박한 질감으로 그려내며, 마치 감정에 조율되지 않는 현실의 단면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흔들리는 카메라, 롱숏으로 비춰지는 주변 환경, 그리고 감정의 중심이 무너진 인물들의 표정. 모든 것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리얼하면서도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한 아이가 경험한 감정의 혼돈, 그리고 순수함이 광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감정적 스릴러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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