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일본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사랑의 고갯길은 맹인 여성 오린의 처절하고 아름다운 인생 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시대의 편견과 사회적 소외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그녀의 삶은 보는 이의 가슴을 깊이 울립니다.
버림받은 소녀, 운명을 거스르다
맹인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 오린은,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고즈(맹인 여성 악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녀는 여섯 살에 고지 공동체에 들어가 순결을 지켜야 하는 삶을 시작하지만, 곧 그 규율마저 지켜내지 못하고 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되죠. 당대 일본 사회에서 장애인 여성, 특히 맹인 여성은 극심한 차별과 통제를 받았습니다. 오린은 그 속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겪으며, 시대의 한계를 온몸으로 마주하게 됩니다.그러던 어느 날, 산길에서 마주친 한 남자 츠루카와는 오린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줍니다. 두 사람은 여행을 함께 하며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오린은 처음으로 인간적인 따뜻함과 진정한 애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들은 함께 축제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며, 힘들지만 자유로운 나날을 보내죠. 그러나 오린은 점차 자신의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며, 본인의 통제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츠루카와는 오린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지만, 그녀를 떠나게 될까 두려워 그 감정을 숨깁니다. 반면 오린은 자신을 탐하지 않는 츠루카와의 태도에 혼란을 느끼며, 먼저 다가서게 되죠.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안은 채, 한 걸음씩 진정한 연인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오린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장사 동료 베쇼는 오린에게 접근하고, 결국 추잡한 방법으로 그녀를 범하려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츠루카와는 격분해 베쇼를 살해하고, 도망자의 삶을 택하게 되죠.
도망자와 함께한 계절들, 사랑은 계속된다
츠루카와는 살인과 탈영의 혐의로 경찰과 헌병의 추적을 받게 됩니다. 그는 오린과 잠시 이별한 뒤, 남쪽 지방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오린은 그와의 재회를 꿈꾸며 고즈 타마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고, 수년의 시간이 흐릅니다. 그 시간 동안 오린은 여전히 맹인이지만, 삶에 대한 의지와 사랑에 대한 믿음만큼은 점점 더 강해져 갑니다.
마침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재회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미 이들의 거처를 알아내고, 둘의 수배령은 전국에 퍼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오린은 츠루카와가 체포되면 자신에게도 피해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끝까지 그를 지키고자 합니다. 츠루카와는 오린의 고향 근처로 이동하며, 그녀가 해를 입지 않도록 일부러 본인의 신분을 경찰에 밝히고 자수를 결심합니다.그는 자신이 강제로 군대에 징집됐고,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파령병이 됐다고 고백합니다. 오린은 그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한 번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지금까지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그의 결정을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츠루카와가 체포된 후, 오린은 그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다시 노래하는 고지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자, 그녀는 생의 끝자락에서 다시 떠돌이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오린의 마지막 여정, 아무도 찾지 않은 죽음
츠루카와와의 이별 이후, 오린은 삶에 대한 희망마저 점점 잃어갑니다. 그녀는 과거 그가 남긴 말들, 따뜻했던 손길, 그리고 함께 걸었던 길들을 떠올리며 외롭게 생을 이어갑니다. 세상은 여전히 장애인 여성에게 가혹했고,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오린은 자신을 알아봐 줄 이 하나 없는 도시에 도착하여, 마지막 희망을 찾아보지만 결국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그녀의 죽음은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고, 장례식도, 유족도 없었습니다. 오직 그녀의 생전 목소리를 기억하는 몇몇 사람들만이 그녀의 노래를 추억했을 뿐이죠. 영화는 오린이 잠들었던 방에 비치는 희미한 햇살과 함께 끝을 맺습니다. 오린의 삶은 비극이었지만, 그녀의 사랑은 진실했으며, 눈이 보이지 않아도 마음만은 세상 누구보다도 밝게 살아간 인물이었습니다.이 영화는 단순한 시대극이나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인간이 사회의 편견 속에서도 끝까지 자존을 지키며 살아가는 치열한 여정을 그리고 있죠. 또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여성에 대한 소외,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섬세한 감정과 드라마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보는 이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