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이 유럽을 덮친 14세기, 신앙과 공포, 사랑과 환상이 뒤섞인 중세를 배경으로 한 매혹적인 실화 기반 판타지 영화.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틀었다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빠져든 이야기. 기독교적 신념과 마법, 복수와 절망, 인간의 끝없는 선택이 교차하는 이 영화는 단순한 ‘마녀사냥 이야기’를 넘어서 인간 내면의 혼돈을 파고든다. 기대 없이 시작했다가 끝내 깊이 빠져드는 이 영화, 중세 배경의 숨은 걸작이다.
1. 흑사병과 신의 이름 아래 벌어진 전쟁
14세기 잉글랜드는 그야말로 혼돈의 시기였다. 흑사병은 신의 형벌로 받아들여졌고, 거리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였으며, 살아남은 자들조차 살아 있다는 이유로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 절망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 오스먼드는 수도원에서 견습 수도사로 조용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는 금기된 사랑에 빠져 있었다. 신과의 맹세를 저버리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고자 했던 오스먼드의 모습은 그 시대의 종교적 권위와 인간적인 본능 사이의 갈등을 상징한다. 결국 그는 그녀를 수도원 밖으로 몰래 보내지만, 떠나는 순간조차 아무런 말도 붙잡지도 못한다. 흑사병은 그들의 이별에 더 큰 무게를 실으며 그들을 가혹한 운명 속으로 던져 놓는다.
그러던 중, 오스먼드에게 주교의 명령이 떨어진다. 신의 사자라 불리는 성기사단과 함께 저주받은 마을로 떠나라는 것이다. 그 마을은 유독 흑사병이 피해 간 유일한 곳이었고, 사람들은 그곳이 악마와 마녀의 지배를 받는 땅이라 믿고 있었다. 마치 십자군처럼 무장한 기사단은 신앙의 이름 아래 검을 들고 출발하며, 이 여정에 오스먼드는 조용히 동참한다. 그러나 그의 진짜 목적은 다르다. 바로 사랑하는 여인을 다시 찾는 것. 이 이중적인 동기가 영화의 첫 번째 갈등 구조를 만들고, ‘신앙과 사랑’이라는 상반된 테마가 서사의 중심축으로 작용한다.
여정이 시작되며, 기사단은 마녀사냥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불에 타 죽는 한 여인, 그리고 아무도 말리지 않는 군중들. 이 장면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당시 유럽 사회의 공포심과 종교적 맹신이 얼마나 깊게 자리했는지를 고발하는 듯하다. 여인을 도와주려다 스스로 손을 더럽히게 되는 성기사의 선택은 이후 영화 내내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무엇이 선인가, 누가 신을 대변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2. 신과 마법 사이, 진실을 감추는 마을
오랜 여정 끝에 기사단과 오스먼드는 드디어 마을에 도착한다. 이 마을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의외로 평화롭고 정돈되어 있다. 기사단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관찰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악마의 지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이 마을 어딘가에 ‘악의 기운’이 존재한다고 믿고 탐색을 계속한다. 바로 여기서 영화의 진짜 스릴과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오스먼드는 이 마을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연인을 찾아 나서고, 그러다 만난 마을 대표 ‘람기바’라는 여인은 묘한 신비함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상처 입은 오스먼드를 마치 마법처럼 치료해주고, 깊은 연민과 이해심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의처럼 보였던 그녀의 행동이 점점 더 수상해지면서 관객은 ‘혹시 그녀가 진짜 마녀일까?’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 마을이 진정한 낙원인지, 아니면 치밀하게 설계된 지옥인지, 영화는 계속해서 퍼즐을 던진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 람기바는 마법 같은 능력을 가졌으며, 오스먼드가 찾던 여인의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죽은 줄 알았던 여인을 되살려 보이는 기적, 그리고 그 기적이 오스먼드의 믿음을 흔드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그 순간, 관객은 현실과 환상, 종교와 미신,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할 수 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과거에 또 다른 기사단을 맞이한 적이 있었고, 그들에게 학살을 당했던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체를 숨기고 스스로를 지키고자 했던 것. 이 반전은 극적인 동시에, 중세 시대에 종교를 도구로 삼은 폭력이 어떻게 순수한 이들을 파괴했는지를 되짚는다.
3. 끝없는 믿음과 복수, 그리고 타락
영화의 마지막은 잔혹하면서도 처절하다. 기사단은 마을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폭력으로 진실을 덮으려 한다. 람기바는 자신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녀가 악마나 마녀는 아님을 영화는 분명하게 암시한다. 오히려 그녀는 치유자였고, 오스먼드의 여인을 이용해 그를 시험한 존재였다. 그 시험은 신앙과 사랑 사이의 갈등을 넘어서, 인간이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결국, 오스먼드는 그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 그것이 악마를 없애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났을 때, 그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걸은 후였다. 신앙의 이름 아래 저지른 그 모든 선택들이 실은 오해와 광기였음을 알게 된 그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몇 년 후, 성기사가 된 오스먼드는 복수를 위해 람기바를 찾아다니지만, 결국 그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또 다른 ‘광신도’가 되어버린다. 영화는 마지막 순간, 오스먼드의 타락한 얼굴을 비추며 끝을 맺는다.
이 장면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순수한 사랑을 품었던 한 청년이, 신을 믿었던 한 수도사가, 결국 신을 빙자해 복수에 눈먼 광신도로 변해가는 것. 이 영화는 단순한 중세 판타지 영화가 아니다. 인간의 신념이 때로는 어떻게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진실이 감정과 신념 앞에서 얼마나 쉽게 왜곡되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적 우화다. 아무 기대 없이 틀었던 이 영화가 끝내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 영화를 꼭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