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5. 4. 3. 22:23

마녀의 후예임을 자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헬 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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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벤더〉는 평범했던 소녀가 자신이 마녀의 후예임을 자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억눌렸던 욕망과 피에 각인된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공포 심리극이다. 독특한 인디 감성, 음산한 촬영, 모녀 간의 갈등이 결합된 이 영화는 마녀 장르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헬 벤더

🧬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피, 마녀의 운명

〈헬벤더〉는 한 마녀가 교수형을 당하며 시작한다. 평범한 소녀에게 씌워진 사악한 운명은, 단순한 주술의 문제를 넘어서 세대를 거쳐 이어진 '피의 계승'이라는 거대한 장치로 확장된다. 외딴 숲 속에서 살아가는 모녀, 주인공 이지와 그녀의 엄마는 인간들과 철저히 단절된 채 살아간다. 엄마는 이지를 헬벤더 가문의 일원으로 키우되, 그녀가 본래 지닌 마녀의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극도로 통제된 삶을 강요한다. 육식을 금지시키고,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며, 그녀의 성장 자체를 봉인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호러 서사를 넘어, 소녀가 자신의 욕망과 정체성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이지는 점차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품기 시작하고, 우연한 만남을 통해 친구를 사귀며 모르는 감정을 경험한다. 특히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지렁이를 마시게 되는 장면은, 단순한 파격을 넘어서 그녀 안에 잠든 본능이 깨어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이후, 환각과 몸의 변화, 정체모를 소리에 시달리며 이지는 자신이 평범한 소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고, 어머니의 감춰온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피로 인해 결정된 정체성,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서 서 있는 한 소녀의 혼란과 공포는 영화 전반에 걸쳐 일관된 톤으로 그려지며, 관객에게 독특한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헬벤더는 단순히 "공포스럽다"는 수식어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모성과 피의 유대를 둘러싼 심리적 스릴러이기도 하다.

🩸 억눌렸던 욕망의 분출, 금기를 넘은 각성

이지의 변화는 점진적이면서도 확연하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곧 그것은 갈망이 되고, 금기를 넘는 욕망으로 폭발한다. 이 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이지가 처음으로 육식을 하게 되는 과정이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그려지기 때문이다. 엄마는 딸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가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더는 막을 수 없음을 직감한다. 그래서 결국 그녀에게 마녀의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 장면들은 매우 아름답게 묘사된다. 마법은 폭력과 파괴가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처럼 그려지고, 이지는 그것에 매료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파괴적 본능도 함께 깨어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서사는 단순한 ‘사춘기의 반항’을 넘어, 억눌려 있던 욕망이 외부 세계를 만나며 폭발하는 성장통을 상징한다. 영화는 이를 시각적으로도 풍부하게 표현하는데, 특히 마녀의 방, 피로 쓴 마법의 책, 그리고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속삭임 등은 인디 호러만의 감각적 미장센으로 전개된다. 이지가 마침내 자신이 ‘헬벤더’라는 존재임을 깨달으며 엄마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이때 이지의 마법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억눌려왔던 정체성의 폭발이자 자유를 향한 외침으로 해석된다. 영화는 그녀의 각성이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더 큰 파국의 서막일 수 있음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바로 이 모호한 엔딩이 이 영화를 더욱 음울하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마녀의 운명을 넘어서 우리 모두에게 향하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 인디 감성으로 빚어낸 사춘기 호러의 수작

〈헬벤더〉는 전통적인 공포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이 영화는 점프 스케어나 잔혹한 비주얼보다 심리적 불안감, 성장에 따른 변화, 관계의 균열을 천천히 쌓아가며 관객을 잠식해 들어간다. 특히 이 작품의 가장 독창적인 지점은 가족의 공동 창작이라는 점이다. 감독인 존 애덤스, 토비 포셋, 그리고 주연배우이기도 한 질리언 애덤스와 조엘리 애덤스는 실제 가족이며, 연출, 촬영, 음악까지 모두 이 가족이 담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마치 한 편의 ‘가족의 예술 프로젝트’처럼 느껴지며, 그 내밀함과 감정의 진폭이 더더욱 리얼하게 다가온다. 특히 이지 역을 맡은 조엘리 애덤스는 실제로도 성장기 소녀의 섬세한 감정선과 충동, 불안, 욕망을 매우 정교하게 연기해내며 이 영화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그리고 영화의 전개를 따라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록 음악과 전자음은 마녀라는 존재의 고전성과 이지의 현대적인 감성을 절묘하게 결합시켜주는 도구로 작용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들, 꿈과 같은 색감의 숲, 마녀로 각성해가는 소녀의 혼란스러운 표정까지,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영화는 하나의 완성도 높은 ‘비주얼 시’로 마무리된다. 많은 이들에게 이 영화는 생소할 수 있지만, 기존 공포 장르에 지쳤거나 새로운 분위기의 작품을 찾는 이들에겐 매우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공포는 ‘외부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내 안의 욕망과 그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피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적이다. 헬벤더는 단순한 마녀 호러가 아닌, ‘자신이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의 두려움을 섬세하게 직조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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