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바탕의 문제작으로 평가받는 이 영화는, 평화를 꿈꾸며 시골로 이주한 한 가족이 마주하는 충격적인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언더토(The Beasts)》는 자연 속 평온한 삶 뒤에 감춰진 인간의 질투, 탐욕, 그리고 공동체의 어두운 민낯을 파고드는 스릴러입니다. 잔잔한 시골 마을에 스며든 비극은 끝내 살인으로 이어지고, 피해자의 가족은 복수와 생존 사이에서 냉혹한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고립된 공간, 절대적인 권력의 부재 속에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보는 이의 심장을 옥죄며 현실의 잔혹함을 생생히 드러냅니다. 명백한 범죄 앞에서도 침묵하는 사회,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1. 평화로운 귀농 생활은 환상이었다: 고립된 시골의 민낯
앙투안과 올가 부부는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스페인의 한 외딴 시골 마을로 귀농을 결심합니다. 이곳은 앙투안의 아버지가 물려준 땅이 있던 곳으로, 그는 이 농장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생활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시골은 환영의 손길 대신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텃세로 그들을 맞이했고, 마을 사람들과 특히 이웃인 샨과 로렌 형제는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앙투안은 이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처음에는 묵묵히 참으며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형제들의 도 넘은 행동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급기야 그들의 괴롭힘은 농작물 파괴, 가축 학대, 위협과 협박 등 물리적 피해로까지 확장됩니다. 형제들이 앙투안을 타깃으로 삼은 이유는 다름 아닌 ‘외지인’이라는 낙인, 그리고 마을 전체가 반대하던 풍력 터빈 설치에 중립적 입장을 보였다는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앙투안은 경찰에 도움을 청하지만, 지역 경찰은 오히려 마을 내 평화를 이유로 사건을 외면합니다. 형제들의 전횡은 지역사회 내 묵인 아래 점점 더 대담해지고, 앙투안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스스로를 감시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형제들에게는 도발이 되었고, 결국 앙투안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외부의 개입 없이 고립된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이 폭력은, 단순한 마찰이 아닌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냅니다. 영화는 이 시골이라는 공간을, 아름답지만 동시에 탈출구 없는 감옥처럼 묘사하면서 극한의 공포를 조성합니다.
2. 남편의 죽음, 그리고 남겨진 자의 고요한 복수
앙투안이 사라지고, 아내 올가는 절망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남편이 실종된 이후에도 형제들은 그들 곁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을 이어가며, 그들을 향한 법의 손길은 닿지 않습니다. 경찰은 여전히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방치하고, 주변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합니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올가의 시선으로 전환되어, 생존과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여성의 내면을 그려냅니다.
초반부엔 다소 수동적으로 보였던 올가는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며 사업을 다시 일으키고, 그가 이루고자 했던 낙농업까지 확장합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마을에서의 삶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도시에서 딸 마리가 찾아오고, 둘은 부딪히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잃은 상실을 견뎌냅니다. 마리는 엄마를 도시로 데려가려 하지만, 올가는 고통을 이겨내고 자신이 지켜야 할 곳에 머무르기로 결심합니다.
결국, 남편이 마지막으로 남긴 비디오 카메라가 발견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비록 그 안에는 범인을 직접 지목할 수 있는 장면은 없었지만, 카메라의 존재 자체가 경찰 수사를 재개하게 만들고, 실종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올가는 복수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단순한 분노나 폭력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올가의 내면에 있는 고요하지만 단단한 결단력을 통해, 복수라는 감정을 묵직하게 다룹니다. 샨 형제와 그들의 가족이 느끼는 공포는 바로 이 조용한 분노로부터 시작되며, 관객은 마침내 권선징악이라는 테마의 깊이를 실감하게 됩니다.
3. 단지 범죄가 아닌, 현대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나 복수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작품은 공동체가 얼마나 쉽게 폭력과 불의에 눈을 감을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고발합니다. 외지인에 대한 적개심, 권위의 부재, 그리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회는 앙투안의 죽음을 사실상 묵인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관객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무엇이 정의인가?”, “공동체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형제들은 무지하고 폭력적이지만, 그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지역사회의 침묵과 동조였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풍력 터빈으로 인해 떨어질 이득, 그리고 자신들보다 뛰어나 보이는 외부인의 몰락이었죠. 영화는 이러한 인간 내면의 질투와 열등감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폭력이 ‘시골 마을’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얼마나 정당화되고 반복될 수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결국 이 영화는 귀농이라는 낭만적 이미지 뒤에 숨겨진 이면을 폭로합니다.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진짜 공포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강하게 각인시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주인공이 반드시 '승리'하는 서사를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관객은 부당함을 견디는 한 여성의 인내와 복수의 서사를 통해 더 깊은 감정의 파동을 느끼게 됩니다. 현실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픽션이 아닌, 어쩌면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진짜 이야기처럼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