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하게 불태워진 여성들의 한이 깃든 스코틀랜드의 외딴 요양지. 이곳에 발을 들인 한 여배우의 삶은 서서히 붕괴되고, 동시에 그녀는 어쩌면 처음으로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마녀들의 땅은 고전적인 공포영화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여성 억압과 사회적 낙인의 역사, 그리고 치유와 해방이라는 깊은 메시지를 오롯이 풀어낸다. 소름보단 울림이, 점프 스케어보단 직면이 더 무서운 영화. 억울한 죽음이 만든 ‘땅의 기억’과 그것이 되살리는 복수의 감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랜 여운을 남긴다.
🔥 1. 잊혀지지 않는 과거, 다시 열리는 지옥의 문
영화는 한때 스타였지만 스캔들과 트라우마로 삶이 망가진 여배우 베로니카의 귀향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자 스코틀랜드의 외딴 요양지를 찾지만, 그곳은 이미 그녀를 기억하는 낯선 시선들로 가득 차 있다. 과거의 감독 에릭은 여전히 업계의 거물로 추앙받고 있고, 그와 함께 작업했던 ‘나바호의 개척자’는 후속편 제작 소식까지 들려온다.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싶었던 베로니카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곁을 지키는 간호사 대시조차 처음엔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전원 속 고요함이 그녀의 상처를 들춰내듯, 베로니카는 처음부터 이 공간과 융합되어 간다. 그리고 이 요양지는 단순한 회복의 장소가 아니다. 이곳은 18세기 마녀사냥의 한가운데였으며, 억울하게 죽은 여성들의 한이 스며든 땅이었다. 그 상처 위에 세워진 요양 시설은 결국 치유가 아닌 대면의 장소로 변한다. 이 땅은 과거를 무시한 자들에겐 침묵하지 않고, 진실을 덮은 자들에겐 속삭임을 보낸다. 그 소리는 처음엔 환청처럼 들리지만, 곧 그녀를 깨우고, 마침내 행동하게 만든다.
🌒 2. 깨어나는 기억과 땅의 분노, 그리고 복수의 서막
욕조 안으로 떨어지는 검은 그림자, 밤새 진흙으로 덮인 실내, 그리고 손끝으로 전달되는 흙의 감각. 베로니카는 점점 ‘이 땅’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그건 단순한 환각이나 악몽이 아니었다. 이 땅에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분노, 억눌린 여성들의 비명이 그녀를 통해 현실로 새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 그리기 수업에서 접한 흙 한 줌조차 그녀에겐 고통의 연대가 되어 폭발하듯 표출된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고립감은 점점 혼재되고, 베로니카는 약 없이 잠들 수 있는 첫날을 맞이한다. 이내 베로니카는 더 이상 외부의 시선이나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대시는 그런 그녀가 걱정스럽지만, 베로니카는 마치 안개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은 듯 담담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단순한 정신적 각성 이상의 무엇이다. 그녀는 이제 이 땅과 하나가 되었고, 이곳이 왜 그녀를 불렀는지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오랜 침묵 끝에 되살아난 기억은 곧 복수로 이어지고, 고요하던 집은 점점 광기로 물들어 간다. 이 영화가 공포를 유발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유령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방식이 아닌, 서서히 스며드는 ‘땅의 기운’을 통해 관객 스스로도 그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 3. 마침내 맞이한 해방, 그리고 남겨진 자의 몫
대시와 함께 간 마을에서 만난 남성은 처음부터 의심스러웠고, 결국 그는 대시에게 범하려다 이 땅의 저주에 의해 응징당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범죄에 대한 응징이 아닌, 이 영화가 끝까지 지켜내려는 핵심 메시지를 보여준다. 과거 여성들이 겪었던 억압과 왜곡된 시선, 그리고 지금도 반복되는 폭력에 대한 경고. 베로니카는 이 저주의 연장선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 고통의 해방구가 된다. 그녀는 마침내 복수를 완수하고, 더 이상 외부의 보호도, 약도, 대시도 필요 없는 상태가 된다. 대신, 현실과의 접점은 점점 희미해지고, 대시는 떠나지만 베로니카는 마지막 숙제를 남기고 에릭과의 대면을 준비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결투가 아니다. 수십 년을 억눌러온 진실의 해방이며, 잿더미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낸 여성의 ‘자기 선언’이다. 결국 에릭도, 사회도 그녀를 침묵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뚜렷한 해피엔딩도, 전통적인 비극도 선택하지 않는다. 베로니카는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통제하게 되었고, 땅과의 연결을 통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떠나는 대시와 달리, 남아야 할 사람은 남았다. 그렇게 영화는 불타는 깃털 사이, 평온한 얼굴의 베로니카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