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ing Ro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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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하고 완벽주의적인 커리어우먼 샬롯은 실직과 우발적인 살인으로 모든 일상이 무너진다. 우연히 마주친 가정부의 아이를 돌보게 되면서 그녀의 내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영화 Keeping Rosy 는 인간의 심리와 도덕, 그리고 파멸의 과정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심리 스릴러이다.

포스터

1. 완벽주의의 붕괴, 한 순간에 무너진 커리어우먼의 삶

주인공 샬롯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커리어 중심의 삶을 살아온 완벽주의자다. 그녀는 자신이 몸담은 직장에서 인정받고, 팀을 이끄는 능력 있는 인재로 살아왔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는 믿었던 동료이자 공동창업자에게서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는다. 자신보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톰이 승진하고, 자신은 밀려나는 부당한 결과에 분노한 그녀는 무너진 자존심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밤,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진다. 가정부가 흡연하며 부주의한 모습을 보였고, 이에 불쾌함을 느낀 샬롯은 격한 말다툼 끝에 샴페인 병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격해버린다. 순간의 충동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가정부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상태에서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고, 밤이 깊도록 그대로 방치한다. 그리고 결국 그녀가 죽었음을 확인한 후, 시신을 유기하기로 결심한다. 이 장면은 그녀가 더 이상 합리적 인간이 아닌, 본능에 휘둘리는 인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샬롯은 시체를 처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한다. 가정부의 차량에 타고 이동하려던 그녀는 뒷좌석에 있던 가정부의 어린 아기를 마주치게 된다. 아기까지 함께 유기할 수는 없었던 샬롯은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이 순간부터, 그녀의 무너진 세계는 또 다른 형태의 비이성적인 감정과 모성 본능이라는 아이러니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2. 도피인가, 돌봄인가: 소시오패스와 아기의 이상한 동거

샬롯은 자신의 살인 행위가 발각될 것을 두려워하며 CCTV와 경비 시스템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도 아기를 숨기고, 주변 시선을 피해 행동하려 한다. 아이는 그녀에게 점점 더 일상과 감정의 중심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 낯설고도 무력한 존재를 돌보는 과정에서, 그녀는 스스로도 낯선 감정을 느낀다. 보호하려는 마음, 안정을 주려는 태도는 죄책감인지, 혹은 억눌려 있던 모성 본능의 분출인지 명확치 않다.

영화는 이런 모호한 심리 상태를 과도한 음악이나 자극적인 연출 없이, 조용하고도 불안한 정적 속에 펼쳐낸다. 관객은 샬롯이 진심으로 아기를 걱정하는지, 아니면 그저 범죄의 증거로부터 아이를 격리시키려는 것인지 계속해서 의심과 동정 사이를 오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샬롯의 동생이 집에 놀러오고, 집 안에 있던 경비원이 수상한 태도로 나타난다. 그는 그녀의 행동을 눈치챘고, 이를 미끼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는 이 시점에서, 샬롯은 또 한 번 폭발한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과 범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세워온 삶이 무너졌다는 분노가 연쇄적으로 터져버리면서 새로운 사건을 낳는다.

이처럼 영화는 ‘돌봄’이라는 본능적 행동과 ‘도피’라는 방어적 심리를 이중 구조로 엮는다. 샬롯이 정말 소시오패스인가, 아니면 완벽주의가 낳은 심리적 붕괴의 피해자인가에 대한 질문은 끝까지 관객의 해석에 맡긴다.

3. 범죄와 본능 사이, 그녀는 괴물인가 인간인가

영화의 후반부는 점점 더 미묘해지고, 불안정한 분위기 속에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샬롯은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CCTV 기록을 불태우고, 경비원에게까지 위협을 느끼며 정신적으로 점점 고립되어 간다. 그녀는 아기를 돌보며 어떤 형태로든 안정을 찾으려 하지만, 주변의 압박과 죄책감, 그리고 과거의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자아가 계속 충돌한다.

심리적으로 붕괴된 샬롯의 행동은 더는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까지 간다. 아이를 숨기고, 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저 한 명의 범죄자가 아닌 심리적 병리 상태에 빠진 현대인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중반 이후부터 액션이나 추격전 없이도 계속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맥심 피크의 연기력 덕분이다. 그녀는 미묘한 눈빛 변화와 말투, 행동 하나하나로 ‘완벽해 보이지만 깨질 듯 위태로운 인물’을 표현해냈고, 이러한 심리적 깊이는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 심화된다.

마지막까지도 영화는 명확한 교훈이나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샬롯이 겪는 내적 고통과 혼란, 아이와의 이상한 유대감, 그리고 사회 속에서 도태된 인간의 초상을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관객은 그녀를 정죄할 수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바로 이 점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긴장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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