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손자를 다시 살리기 위해 임산부를 납치한 노부부, 그리고 펼쳐지는 악령의 지옥. 영화 『데어스 썸원 인사이드(There's Someone Inside Your House)』보다도 더 잔혹하고, 『허비 다이』보다도 더 소름 끼치는 이 작품은, 공포의 본질을 정확히 찌른다. 이 영화는 점프 스케어보다 무서운 확신 없는 공포,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악마적 집착을 보여준다. 공포의 진짜 얼굴은 핏빛이 아니라, ‘선의’로 위장된 광기임을 증명하는 영화다.
1. 할머니, 왜 저를 납치하셨죠? — 지옥의 의식은 이렇게 시작된다
해고당한 주인공 헨리는 실직의 충격도 잠시, 의문의 부부에게 초대받는다. 그러나 이 부부, 평범한 노인은 아니다. 오히려 사탄 숭배 교단의 일원으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악령 소환 의식을 준비해온 자들이었다.
납치된 여성 ‘베커’는 임신 중이며, 그녀의 태아는 죽은 손자 ‘잭슨’의 영혼이 깃들 몸으로 선택된다. 그들은 납치를 정당화한다. 사랑하는 손자의 부활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납치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한다.
그러나 악령은 결코 순순히 오지 않는다.
그들이 부른 건 손자가 아닌, 지옥 전체였다. 의식은 예상과 달리 뒤틀리기 시작하고, 집 안에는 죽은 자들의 혼령이 서서히 깨어난다. 악몽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2. 악령은 소환되었고, 상황은 예측 불허로 치닫는다
의식이 실패로 돌아간 그날 밤, 집 안은 점차 뒤틀린 차원으로 바뀐다. 창밖에선 정체 모를 어린이들이 같은 복장으로 계속 노크를 하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죽은 사람의 목소리는 베커의 멘탈을 서서히 파괴한다.
심지어 침대 밑에 숨어 있던 ‘비닐 유령’의 등장은, 이 영화의 첫 번째 극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이는 단순한 귀신이 아니다. 영화는 말한다.
“악령은 귀신이 아니라, 내 안에 파고든 어떤 허용일지도 모른다.”
부부의 신념은 점점 광기로 치닫고, 베커는 출산이라는 절대적인 운명 앞에서 선택을 강요당한다. 거기다 도움을 청하러 온 제3자 이안조차, 새로운 방식의 주술을 시작하며 모든 상황은 더욱 통제 불능으로 흘러간다.
이 영화의 강점은 여기에 있다. 누구도 정답이 없고, 모두가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결국엔 누구 하나라도 미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 공포는 분위기가 아니라, 선택의 모호함에서 시작된다.
3.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 악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
결국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 그들은 손자를 살리려 한 것이 아니라, 태아라는 ‘문’을 통해 지옥 그 자체를 소환했던 것이다. 이 장면에서의 연출은 간단하지만 강렬하다. 지옥의 문이 열리는 찰나의 정적, 그리고 뒤이어 밀려오는 무수한 검은 존재들.
마지막 반전은 베커가 탈출한 뒤, 멀리 보이는 실루엣으로 마무리된다. 그 존재는 공격하지 않지만, 베커는 직감한다.
“잭슨은 지금... 내 안에 있다.”
이 결말은 명확한 승패 없이, 마치 공기를 남겨놓은 듯한 불안으로 끝난다. 해피엔딩도, 완전한 패배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서, 관객은 자신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저 상황에서 아이를 어떻게 하겠는가?”
✅ 마무리
영화 『데이브 메이드 어 메이즈』처럼 기묘하고, 『허비 다이』처럼 심리적으로 피폐해지며, 『로즈메리의 아기』처럼 모성이라는 개념을 뒤흔드는 작품이다. 『데어 인사이드』, 『인시디어스』 같은 단순한 공포 구조를 기대했다면 이 영화는 조금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
심야에 이 영화를 혼자 본다면, 다음날 아침까지 불을 켜고 잘 수도 있다.
극단적 상황에서 사람은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이 영화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