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7천만 원의 제작비로 전 세계 관객의 정신을 쏙 빼놓은 역대급 SF 걸작. 영화 〈평행이론〉은 "상상력 하나로도 명작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한 수작입니다.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멀티버스와 도플갱어, 시간붕괴의 개념을 치밀한 대사와 연출로 풀어낸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선 충격의 체험이 됩니다.
1. 혜성이 휘저은 밤, 그리고 균열
지구 근처를 지나가는 혜성. 그저 하늘의 이벤트일 줄 알았던 밤은, 한 파티에 모인 친구들에게 믿을 수 없는 일들을 선사합니다. 전기가 끊기고, 휴대폰은 망가지며 인터넷은 먹통이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논리’가 사라지고 ‘의심’이 시작되죠. 영화는 초반부터 일상의 균열을 통해 시청자의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있는 집’을 마주한 순간, 이 영화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님을 눈치채게 됩니다.
파란색 야광봉을 든 주인공들과, 맞은편에서 동일한 모습을 한 붉은색 야광봉의 다른 무리들. 동일한 집, 동일한 사람들, 단지 다른 행동. 이 장면에서 영화는 본격적인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끌어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 즉 한 사건이 관측되기 전까지 모든 상태가 중첩된다는 양자역학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며, 관객은 ‘내가 믿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복잡한 설정이 거대한 특수효과나 우주선, 시각적 CG 없이 단지 ‘대화’와 ‘심리적 긴장감’만으로 표현된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거실, 단순한 조명, 그리고 한정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대화의 충돌은 오히려 훨씬 더 극단적인 공포감을 줍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인간관계, 기억, 그리고 현재마저 불확실하게 만드는 이 영화의 첫 번째 장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2. 상자 속의 고양이와 무너진 경계
파티 참석자들은 곧 알게 됩니다. 자신들이 있는 공간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고,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다른 버전의 현실’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멀티버스와 도플갱어 개념을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설명하며, 관객들에게 한 차례 더 뇌를 흔듭니다.
여기서 중요한 도구는 ‘사진 상자’입니다. 각 집의 구성원들이 사진을 찍고, 그 뒤에 무작위 숫자를 써서 구별하는 방식은, 각 세계를 식별하는 일종의 ‘증명’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점점 모든 상자들이 뒤섞이기 시작한다는 것. 누가 원래 이 집의 ‘진짜’ 멤버인지, 누구는 타 세계에서 침입한 존재인지, 아무도 구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전과 이기적인 판단은 오히려 외계나 괴물보다 더 무섭습니다. 마이크는 과거 연인이었던 배스와의 과거를 들추며 상대 세계의 자신을 협박하려 하고, 슈와 아미어는 원래 이곳의 사람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하며 탈출을 도모합니다. 상자 속의 숫자, 노트에 적힌 색깔, 자잘한 단서들을 통해서 누구를 믿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인물들의 혼란은, 곧 관객의 혼란이 됩니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무수한 선택의 갈래 속에서 인간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라는 깊은 주제를 다룹니다. 각자의 세계에서 소소한 실수 하나가 어떻게 엇갈림을 만들고, 작은 변화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말로 이어지는지 섬뜩하게 보여줍니다.
3. 진짜 나의 세계는 어디인가
극 중 주인공 ‘엠’은 영화의 마지막에 큰 결정을 내립니다. 혼란 속에서 자신이 속해있던 세계를 포기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화로운 세계로 넘어가 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그곳의 자신을 없애고,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녀의 선택은 윤리적인가? 영화는 답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객에게 질문을 남깁니다.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괴물이 아니라 ‘불확실성’입니다. 내가 지금 있는 현실이 진짜일까? 내가 알고 있는 이 사람이 진짜 그 사람일까? 결국 우리가 믿고 있는 세계란 것이, 얼마나 허약한 증거에 기반하고 있는지 드러나죠. 그리고 이 모든 설정이 단 7천만 원의 제작비, 단 하나의 거실 세트, 고작 8명의 배우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충격입니다.
〈평행이론〉은 사실상 연극 무대처럼 구성되어 있으며, 대사와 인물 간의 충돌만으로 압도적인 긴장감을 이끌어냅니다. 영상미나 사운드트랙, 편집이 오히려 현실적이기 때문에 ‘리얼타임으로 벌어지는 듯한’ 감각을 제공합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은 스스로에게 계속 묻게 됩니다. “나는 정말 이 현실이 진짜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이 영화는 단순한 SF나 공포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는 ‘존재의 확신’을 무너뜨리는 메타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평행이론〉은 오히려 조용한 충격, 침묵 속의 공포를 선사합니다. 무엇보다 그 충격은 영화를 본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