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지구로 귀환한 한 젊은 탐사대원이 우연히 마주한 진실은 오래된 상처와 음모,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능적 열망이었다. **〈타이즈〉**는 모성, 생존, 식민지화의 그늘을 겹겹이 쌓아 올리며 한 여성의 깨달음과 선택을 시적이면서도 잔혹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버려진 별의 숨결 속에서 다시 태동하는 생명, 그 생명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밤 깊은 어둠에 띄워 보내며, 끝내 잠 못 이루게 만드는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폐허 위에서 다시 뛰기 시작한 심장
지구가 이미 멸망한 뒤, 인류는 케플러 행성으로 옮겨가 살아남는다. 그러나 그곳에서 여성들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고, 인류의 씨앗은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바로 이 절박한 상황에서 출발한다.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순간, 인간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갈망이 만들어낸 프로젝트가 바로 ‘율리시스’였다.
주인공 블레이크의 아버지는 지구 귀환 탐사대에 참여했지만, 1호 탐사대는 사라졌다. 남겨진 것은 실종이라는 단어뿐이었다. 아버지의 흔적 하나를 붙잡기 위해 블레이크는 2호 탐사에 자진 참여한다. 이 선택에는 인류의 미래뿐 아니라,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깊게 배어 있다.
지구에 착륙하는 순간, 폭풍처럼 몰아치는 바람과 요동치는 대지는 영락없는 죽음의 별이었다. 하지만 이 폐허의 한복판에서 블레이크는 뜻밖의 생명, 아이들을 마주한다. 죽은 줄 알았던 지구에서 살아 숨 쉬는 아이들. 그것은 한 줄기 빛이자, 모든 진실이 뒤집히는 서막이었다.
버려진 지구, 되살아난 진실들
블레이크가 처음 만난 사람들은 생존자라기보단 어느 거친 부족처럼 보였다. 그들 사이에서 아이들의 모습이 있다는 사실은 곧 인류의 희망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희망의 뒤에는 언제나 어둠이 있었다.
깊숙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깁스—그는 아버지의 옛 동료였으며, 율리시스 1호의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한순간에 블레이크의 세계를 재편한다.
원주민과의 충돌, 아버지의 죽음, 생존을 위해 싸웠던 나날들… 그리고 무엇보다 지구에서 다시 임신이 가능해진 여성들.
케플러에서는 닫혀버린 생명의 문이, 지구에서는 다시 열리고 있었다. 이 사실은 인류에게 너무도 커다란 가능성이었다. 블레이크의 몸에서도 천천히 변화가 시작되자 그녀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완전히 끌려들어 간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또 다른 진실을 숨기고 있다. 깁스의 미소 뒤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이질감, 설명되지 않은 죽음들, 원주민들의 이상한 움직임—이 모든 것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버지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던 블레이크는 결국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아버지는 원주민 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닐.
블레이크의 ‘이복동생’이었다. 이 사실은 그녀를 눈물과 혼란의 갈림길로 끌어당긴다.
아버지는 임무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 진실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인류가 스스로 지구를 재차 무너뜨리지 않도록.
피와 윤리, 그리고 새로운 별의 선택
영화가 절정에 이르러 드러나는 깁스의 실체는 한마디로 ‘식민자의 욕망’이다.
그는 케플러 인류를 지구로 데려와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폐허의 지구를 다시 식민지화하려 했다.
과거 인류가 저질렀던 잘못을 반복하려는 또 하나의 역사.
블레이크의 아버지는 그 비극을 막기 위해 저항했고, 결국 죽음을 맞았다.
블레이크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아버지의 신념을 이어받을 것인가,
아니면 케플러 문명을 지구로 이끌어 또 다른 지배를 허락할 것인가.
그녀는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지켜야 할 쪽’을 선택한다.
원주민의 생명, 그들의 삶, 그들의 터전.
그리고 갇혀 있던 사람들을 풀어주며, 깁스의 폭주를 끝내기 위한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는다.
깁스와의 대립은 결국 인간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누가 더 인간다운가?’라는 질문은 블레이크라는 인물을 통해 뚜렷해진다.
그녀는 피로 이어진 동생을 보호하고, 원주민의 생존을 돕고, 인류의 미래를 몸소 되찾는다.
마지막 장면은 다소 급하게 수습되지만, 그 안에는 폐허 속에서 되살아난 희망이 은근히 스며 있다.
지구는 다시 생명을 품을 수 있게 되었고, 블레이크는 새로운 가족을 얻었다.
이별과 배신, 숱한 선택의 끝에서 모성이라는 이름의 빛이 그녀에게 찾아온 것이다.
이 영화는 외계 행성의 배경을 두고 있지만, 결국엔 인간의 본성과 윤리에 대한 이야기다.
멸망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명의 가능성, 그 가능성 앞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욕망과 선택.
〈타이즈〉는 묻는다.
“당신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그 질문이 마음속에 오래 남아, 밤이 깊어도 쉽게 잠들지 못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