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의 머릿속에서 발견된 쪽지 한 장, 거기엔 실종된 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영화 《컷오프》는 한 법의학자가 딸을 구하기 위해 시체에 감춰진 단서를 따라가는 강렬한 추적 스릴러다. 해부실, 외딴 섬, 정체불명의 살인자, 그리고 과거에 저지른 법적 판단의 대가가 복수로 돌아오는 이야기는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시신이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법보다 더 잔혹한 정의. 이 영화는 공포와 분노, 죄책감과 정의 사이의 경계에 관객을 밀어 넣는다.
1. 시체의 입속에서 발견된 딸의 이름
법의학자 ‘폴’은 이혼 후 점점 딸 한나와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평범한 날처럼 식사하던 중 딸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그 이후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마침 들어온 사건은 공원에서 발견된 신원 미상의 여성 시신. 그러나 그 시신의 머리 안에서 믿기 어려운 물건이 발견된다—딸 한나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 폴은 혼란에 휩싸인 채 그 쪽지를 숨기고, 곧바로 전화를 건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한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지 말고, 찾지 말라"고만 한다.
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고, 시신은 말할 수 없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폴은 이 단서가 단순한 위협이 아닌 구조 요청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혼자 수사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멀리 떨어진 헬골란트 섬에서 린다라는 여성은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을 피해 숨어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또다시 그녀를 찾아오고, 도망치던 린다는 해변에서 한 남자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이후 린다는 폴과의 통화로 엮이게 되며, 이 끔찍한 사건 속에 얽히게 된다.
시체 안에서 또 다른 단서를 찾기 위해 린다는 해부를 시작하게 되고, 점점 밝혀지는 진실 속에는 고통스럽고 잔혹한 과거가 숨어 있었다. 시체의 목 속에서 발견된 사진과 목걸이, 그리고 수사망을 피해 숨어있는 한 인물의 흔적. 폴은 점점 사건의 전말에 다가가지만, 그것이 그 자신과 과거 판결과 얽혀 있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2. 정의의 이름으로 감춘 죄, 그 대가의 시작
시체 속 단서들은 과거 한 재판과 연결되어 있었다. 피해자 소녀 릴리는 성폭행 후 살해당했고, 그 용의자 필립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폴은 당시 담당 부검의로, 피해자 아버지이자 경찰이었던 스테판은 그에게 타살을 주장하며 자살로 기록하지 말아달라 간청했지만, 폴은 원칙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범인은 풀려났고, 스테판의 딸은 죽었다.
시간이 흐른 후, 범죄를 되풀이한 필립은 또 한 소녀를 성폭행 후 자살하게 만든다. 이제 스테판은 더 이상 법을 믿지 않는다. 그는 자의로 '심판자'가 되기로 한다. 폴의 딸 한나는 복수극의 중심이 된다. 스테판은 철저히 계산된 복수를 위해 시신 안에 단서를 심고, 폴이 그 단서를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딸을 구하고 싶다면, 과거의 죄를 직시하라는 잔혹한 퍼즐이었다.
린다는 도망치지 않고 폴을 돕기로 결심한다. 그녀 역시 과거의 공포로부터 도망쳐 온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린다는 폭풍이 몰아치는 섬에서, 혼자 죽은 시신을 해부하며 단서를 찾고, 폴은 마침내 딸의 행방을 좇아 헬골란트 섬으로 향한다. 동시에 린다는 헛간에서 스테판이 필립을 감시하며 꾸준히 기록을 남겨온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법이 놓친 악인을, 스테판은 광기 어린 방법으로 심판하고 있었던 것이다.
폴은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딸을 잃을 위기 속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과거에 지켜낸 것은 ‘정의’가 아니라 ‘관료적 무관심’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스테판은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 “딸을 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너는 죄 값을 치러야 한다.”
스테판은 필립에게 복수를 끝내고, 자신도 삶을 마감하려 한다.
3. 누가 진짜 괴물인가 – 법, 인간, 아니면 우리 자신
결말에 이르러 폴은 헬골란트 섬의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벙커 시스템 속에서 마침내 딸 한나를 발견한다. 그녀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지만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고, 다행히 제때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안도는 잠시였다. 감춰졌던 마지막 인물, 릴리의 아버지 스테판이 다시 나타나 그들을 위협한다.
마지막 대면에서 폴은 결단을 내린다. 더는 원칙이나 관료제 뒤에 숨지 않는다. 스테판을 무력화한 뒤 손가락을 절단해 그를 놓아버린다. 그 순간, 그는 괴물과 인간 사이에서 인간으로 남기를 선택한 것이다.
영화는 스릴러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본질은 ‘법의 한계’와 ‘인간의 심판’ 사이의 충돌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피해자조차 되지 못했던 소녀들이 있다.
영화는 이야기의 구성을 빠르게 교차 편집하며, 관객에게 조각난 퍼즐을 맞추도록 유도한다. 이는 몰입감을 주지만 동시에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무죄는 무죄가 아니고, 정의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때로는 가장 괴물 같은 것이 법의 이름을 가진 인간일 수 있다는 것.
**《컷오프》**는 단지 긴박한 구조극이 아니다. 그것은 부검대 위에 놓인 사회의 양심이다. 강간범에게 너무도 관대한 법제도, 피해자가 입을 꿰매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 그리고 눈감은 시민들. 이 영화는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꼭 그래야만 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