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그것’이 있다. 귀엽게만 보이던 인형이 악령의 매개체가 되고, 죽은 엄마의 얼굴로 다가온 존재가 실은 지옥에서 온 악마라면? 인도네시아 공포 실화 기반 영화 《인형의 저주》은 강령술, 빙의, 퇴마, 가족사까지 절묘하게 엮어낸 정통 오컬트 스릴러다. 아이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 아이를 통해 세상에 스며들려는 사탄의 자식. 감히 손댈 수 없는 공간, 말하지 말아야 할 존재. 그 모든 것이 일상 속에서 스며든다.
“인형은, 바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1. 아이의 손에 쥐어진 인형, 그리고 첫 번째 신호
영화는 아이들이 통학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평범한 풍경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 일상의 이면엔 이미 낌새가 감돈다. 부모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주인공 바냐는 숙모의 집에서 말없이 선물만 받은 뒤 방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최근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었고, 삼촌 아이덴의 집에 맡겨진 상태다. 애써 감정을 누른 채 일상에 적응하려는 바냐. 하지만 그녀를 향한 ‘무언가’는 이미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덴은 조카를 위로하고자 특수 제작된 인형을 선물한다. 이 인형은 세상에 하나뿐인, 거대한 유리 눈을 지닌 인형이다. 아이덴의 연인 마이라도 인형을 건네며 “이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함께 나눌 친구가 생겼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냐의 무표정한 얼굴은 어딘가 불안하다.
동네 아이 디토는 바냐에게 “찰리찰리”라는 강령술 게임을 알려준다. 죽은 영혼을 불러 질문하면, 연필이 방향으로 대답하는 금지된 놀이. 아이들은 장난처럼 떠났지만, 디토는 영혼 탐지 앱을 설치해 진지하게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리고 바냐는 그 앱을 통해, ‘엄마’를 다시 만나길 원한다.
그날 밤. 초록색으로 깜빡이는 신호에 이끌려 바냐는 집안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녀는 “절대 너를 떠나지 않을게”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눈물 어린 재회. 하지만 이 목소리는 진짜일까?
이 첫 번째 접촉 이후, 기이한 현상들이 집 안팎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악몽, 혼잣말, 그리고 피아노 소리. 마이라는 어느 순간 바냐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누군가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다음 날 그녀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깊은 구덩이에 빠지고 만다. 휴가는 중단된다.
2. 무너진 환상, 진짜 엄마는 그곳에 없었다
마이라는 곧바로 심령 전문가 라라쓰와 라이나르드를 찾아간다. 두 사람은 오랜 경험을 가진 퇴마사로, 바냐의 상태를 확인한 뒤 이 집 안에 있는 영혼이 ‘엄마’가 아닌, 악령이 변장한 것임을 직감한다.
이 악령은 과거 바냐의 엄마와 아빠가 죽던 날에도 존재했던 사탄의 자식으로, 이미 수십 년 전 라라쓰가 퇴치한 적 있는 고대의 존재였다.
문제는, 이번엔 인형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바냐를 감염시키고 있었다는 점이다.
라라쓰는 바냐에게서 악령을 떼어내려다 되려 공격을 받고 쓰러진다. 병원에서 깨어난 그는 이 악령이 왜 다시 나타났는지, 누구에 의해 소환되었는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놀랍게도 아이덴이 있었다.
바냐의 삼촌이자, 겉보기엔 그녀를 돌보는 보호자인 그는 사실 자신의 형(바냐의 아버지)을 죽이고 장난감 공장을 차지하려 했으며, 그 과정에서 악령을 소환했다. 목적은 단순한 이득이었고, 희생자는 바냐의 가족이었다.
진실은 더 무겁다. 바냐의 부모는 악령을 막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바냐는 무의식 중에 그 악령을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인형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죽은 자의 기억과 사악한 존재의 의지를 담는 그릇이었다.
이 인형을 통해 악령은 바냐와 동화되었고, 마이라를 납치하며 사람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바냐는 점점 자신의 의식을 잃어가며 악령의 그릇이 되어간다. 그녀의 눈빛은 이제 아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을 담고 있다.
3. 되돌릴 수 없는 것들, 끝내 밝혀지는 진실
결전은 공장과 아이덴의 할머니 집을 무대로 펼쳐진다. 라라쓰와 라이나르드는 마이라를 되찾기 위해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미 마이라는 악령에 의해 빙의된 상태. 그녀의 목소리, 표정, 손짓이 전혀 다른 존재의 것이 되어있다.
라라쓰는 라이나르드를 피신시키고, 마이라를 공격하며 시간을 번다. 결국 라이나르드는 의식을 통해 악령을 추방하는 데 성공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었다.
아이덴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부정하지만, 라라쓰가 본 과거의 기억은 그의 죄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악령 소환과 살인, 두 가지 죄를 짊어지고 결국 경찰에게 체포된다.
영화의 마지막, 바냐는 악령에서 해방되어 마이라와 함께 안정을 되찾는다.
하지만 무언가 꺼림칙한 여운은 남는다. 인형은 불태워졌지만, 악령은 정말 사라졌을까?
어느 벽장 구석,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바냐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형의 저주》은 단순한 공포영화를 넘어, 가족과 배신, 죄와 대가를 중심에 둔 오컬트 스릴러다. 인도네시아적 정서와 미신, 퇴마술이 절묘하게 뒤섞인 이 작품은 익숙한 장르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동양적 공포의 촉감을 놓치지 않는다.
인형 하나에서 시작된 악몽은 결국 한 가문의 붕괴와 속죄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질문 하나.
“우리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악에 다가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