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댄서로 살아가던 한 여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언니의 아파트로 숨어든다.
하지만 그곳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있었다.
영화 **〈비너스(Venus, 2022)〉**는 현실의 범죄와 초자연적 공포가 뒤섞인 스페인식 다크 판타지로,
도시의 어두운 욕망을 신화처럼 펼쳐낸 작품이다. 피와 그림자 속에서도 기묘하게 아름다운 이 영화,
보는 순간 당신은 단숨에 그 지하의 광기에 끌려들 것이다.

피투성이의 도주, 그리고 낯선 집의 문
LA의 어둠이 깃든 클럽.
스포트라이트 아래 춤추던 댄서 루시아는 그날 밤, 위험한 선택을 한다.
돈과 약을 훔쳐 달아나던 순간 — 그녀의 다리에 칼이 꽂힌다.
피를 질질 흘리며 도망친 그녀가 찾아간 곳은, 어린 조카와 언니가 살고 있는 낡은 아파트였다.
언니의 집은 어딘가 이상했다.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속삭임, 복도 끝을 지나는 그림자,
그리고 5층 노인들이 매일 밤 문 앞에 놓는 ‘무언가’.
루시아는 처음엔 피신이라 믿었지만, 곧 이곳이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벽에는 오래된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고,
아이의 방에서는 기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몸을 웅크릴수록, 그 아파트는 점점 더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피와 의식, 그리고 5층의 비밀
깡패들에게 쫓기던 루시아는 점점 악몽 속으로 빠져든다.
깨어있어도 현실 같지 않은 환상,
죽은 줄 알았던 언니가 피투성이로 나타나 자신을 공격하는 장면,
그리고 언제나 반복되는 문틈의 속삭임.
5층 할머니들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상처를 보고 “신이 선택한 표식”이라 속삭였다.
이 아파트는 오래전부터 ‘여신의 그릇’을 찾고 있었다.
이곳에 살던 모든 여성들은, 그 여신을 위해 제물처럼 길러졌던 것이다.
루시아는 처음엔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상처가 낫지 않고 오히려 피가 끓어오르며 힘이 솟구친다.
그녀는 알바라는 소녀와 함께,
이 아파트가 인간과 악마, 신화가 공존하는 **‘문턱’**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사이 깡패들이 들이닥치고,
그들 앞에 나타난 건 인간이 아닌 괴물이었다.
붉은 피와 어둠이 뒤섞인 그 존재는, 오래전부터 여신을 모시던 수호자였다.
피로 물든 구원, 새로운 여신의 탄생
루시아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아파트의 심장부로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수천 개의 목소리,
그리고 거대한 괴물처럼 꿈틀대는 벽.
그녀는 결국 깨닫는다.
“이 집은 나를 삼키려는 게 아니라, 나로 다시 태어나려는 것이다.”
마지막 전투에서 루시아는 깡패들을 쓰러뜨리고,
할머니들을 제거하며 새로운 ‘비너스’로 거듭난다.
그녀의 눈빛은 피처럼 붉었고, 몸에서는 섬광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아파트는 무너졌지만, 그녀만은 살아남았다.
알바의 손을 잡고 떠나는 마지막 장면.
폐허가 된 도시 위로 떠오르는 붉은 달은,
마치 새로운 신의 탄생을 알리는 듯했다.
영화 〈비너스〉가 남긴 여운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여성의 상처, 생존, 그리고 권력의 재탄생이라는 강렬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루시아가 피로써 ‘비너스’가 되는 여정은,
두려움을 통해 스스로를 다시 만드는 인간의 초상을 닮았다.
감독 하우메 발라게로는,
‘공포’를 통해 인간의 어둠과 구원을 동시에 보여주는 연출에 탁월하다.
공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은 신화적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다.
비주얼은 음울하고, 음악은 살을 파고들며,
공포의 장면 하나하나가 미학적 공포의 정점을 찍는다.
마지막 루시아의 눈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무리
〈비너스〉는 단순한 ‘귀신 영화’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신화를 만들어내고,
공포가 곧 구원으로 변하는 서사.
이 영화를 보는 순간, 당신은 깨닫게 된다.
공포는 결국 인간 안의 신성이다.
피는 끔찍하지만, 그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생명은 아름답다.
밤이 깊을수록 빛나는 여신,
그 이름은 — 비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