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길에서 시작된 교통사고, 그리고 두 여성의 기묘한 동거.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는다.
죽은 딸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엄마, 그리고 점점 무너져가는 한 여성의 정체성.
《미러 넘버 3》는 상실과 대체, 그리고 인간의 불안한 본능을 그린 심리 미스터리다.
칸 영화제 초청작답게 섬세한 연출과 서늘한 긴장감으로 관객의 숨을 조여 온다.

낯선 만남, 그리고 이상한 평온
한적한 시골길. 다툼을 벌이던 커플은 뜻밖의 사고를 목격합니다.
뒤집힌 차량, 피투성이의 남자, 그리고 멀리 들판에 쓰러진 젊은 여성.
그녀의 이름은 라우라.
목숨을 건진 라우라는 자신을 도와준 중년 여성 베티의 집에서 잠시 머물게 됩니다.
베티는 따뜻하고 정갈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뜻한 수프, 깨끗한 침대, 그리고 다정한 미소.
라우라는 오랜만에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서서히 안정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이상했습니다.
베티는 라우라를 **자신의 이름 ‘엘레나’**로 부르고,
라우라가 피아노를 칠 때마다 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무언가가 잘못된 느낌.
하지만 라우라는 그 불안을 애써 무시한 채
“이곳이라면 괜찮을지도 몰라…”라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가족의 집, 그리고 감춰진 이름
며칠 후, 베티는 남편 리하르트와 아들 막스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라우라에게 “내 가족을 꼭 만나줬으면 해”라며 들뜬 표정을 짓죠.
식탁에는 네 개의 접시가 놓여 있고,
남편과 아들은 낯선 여인을 보며 묘하게 굳은 얼굴을 합니다.
그때 베티가 말합니다.
“라우라는 이제 우리 가족이야.”
그 말에 식탁 위의 공기가 얼어붙습니다.
그럼에도 라우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가족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요리를 내놓습니다.
그녀가 만든 음식은 바로 그 집의 딸, 엘레나가 좋아하던 메뉴였죠.
아무것도 모르는 라우라는 베티의 환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만,
리하르트와 막스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불안, 그리고 미묘한 슬픔이
이 집의 공기를 서서히 비틀어가기 시작합니다.
죽은 딸, 그리고 깨진 거울
시간이 흐르며 라우라는 가족의 일상에 스며듭니다.
베티는 라우라를 딸처럼 챙기고,
막스는 그녀에게 묘한 호감을 느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우라는 막스에게서 충격적인 진실을 듣게 됩니다.
“그들은 미쳤어.
넌 죽은 내 여동생의 옷을 입고, 그녀의 피아노를 치고 있어.
너는 엘레나의 ‘대체품’이야.”
모든 게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라우라는 자신이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는
끔찍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베티는 죽은 딸을 잃은 상실을 견디지 못해
라우라를 새로운 엘레나로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그녀의 다정함은 사랑이 아니라, 광기였죠.
라우라는 혼란 속에 도망치려 하지만
베티의 집은 더 이상 단순한 ‘쉼터’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상실과 집착이 만들어낸 거울의 감옥.
누군가의 ‘대체물’이 된다는 공포가
라우라의 영혼을 서서히 부식시켜 갑니다.
마무리
《미러 넘버 3》는 2025년 10월 개봉한 최신작으로,
칸 영화제 초청작이라는 타이틀답게 완벽한 연출과 몰입감을 자랑합니다.
잔혹하거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냉정한 공포.
거울 앞에 선 두 여인은 서로의 상처를 닮았고,
결국 그 상처가 그들을 연결시키며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우린 모두 누군가의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일 뿐.”
그 문장이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화려한 반전보다, 그 뒤에 남는 서늘한 잔향이 더 오래 남는 작품.
심리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