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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랜드(monsterland2020)

by 영화보자 2025.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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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유출로 죽어버린 바다, 인생도 함께 무너져버린 남자. 어느 날 그가 해변에서 주운 것은, 살아있는 인어였다. Hulu의 옴니버스 호러 시리즈 《몬스터랜드》의 팔라시오스 에피소드는 괴물보다도 외롭고 아픈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물고기도 인간도 아닌 존재, 이너.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뿌리내릴 곳 없는 남자 샤코. 바닷가 한가운데서 만난 두 존재는,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다. 그러나 동화는 결국 새드엔딩이었다.

몬스터랜드 포스터


1. 바다를 잃은 남자, 육지에 내던져진 혼란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는 단지 환경 재해가 아니었다. 팔라시오스라는 작은 항구 도시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비극이었다. 주인공 샤코는 2대째 어부로 살아온 인물. 바다는 그에게 단순한 생계가 아닌 존재의 이유였다. 그러나 유출 사고 이후, 바다는 시커멓게 타들어갔고, 죽은 동물의 사체만이 밀려왔다. 샤코는 그 사체들을 수거해 정유회사로 보내는 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간다.

배를 탈 수도, 물고기를 잡을 수도 없는 지금, 샤코는 ‘물고기에게 땅에서 살라’는 형벌을 받은 셈이다. 주변 사람들은 사고 이전처럼 살아가려 애쓰지만, 샤코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미국 사회에 온전히 편입되지 못했던 그는, 이제 자신의 고향인 바다에서도 배제된 것이다.

이 모든 와중에, 브리즈라는 젊은이가 나타난다. 그는 샤코의 배를 빌려달라며 집요하게 들이댄다. 이 요청은 단순한 도움을 넘어서, 샤코의 상실감과 자존심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도발이다. 그는 이미 바다의 주인이 아니라, 쓸모없어진 노인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기적처럼 찾아온 것이 있다. 기름에 뒤덮여 쓰러진 인어. 이 끔찍한 현실의 해변에서, 동화 속에서나 등장할 존재가 실재했던 것이다.


2. 괴물인가 동료인가, 인어와의 공존

처음에는 그저 ‘기이한 생물’로만 여겼던 인어. 그러나 샤코는 차마 그 존재를 죽이지 못한다. 그물로 제압한 후에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간호하기 시작한다.
아가미에 끼어 있던 기름을 닦아내고, 물을 갈아주고, 영양을 챙기며 샤코는 마치 한 생명을 되살리는 듯한 마음으로 인어를 돌본다.

그녀는 말도 하지 않지만, 샤코는 묘한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다. 이너는 물고기도, 인간도 아니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 그건 바로 샤코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이방인으로 태어나, 바다를 잃고, 육지에서도 외면당한 그. 샤코는 인어를 통해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어는 위험한 존재일 수도 있었다. 동화 속 인어처럼 순수하지도, 환상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이해해 준 유일한 존재”**로, 샤코에게는 점차 특별해진다.

그리고 기적처럼, 인어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 앞에 나타난다. 그 순간, 샤코는 완전히 빠져든다. 그녀의 존재는 그의 신체적 상처는 물론, 내면의 결핍까지 치유해준다. 한때 누구보다 당당했던 ‘바다 사나이’로의 자존감을 되찾은 샤코는, 마치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3. 환상과 현실의 경계, 바다에 묻힌 자아

하지만 이 달콤한 환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느 날 밤, 불청객들이 그들의 은신처를 급습한다. 누구인지, 왜 찾아왔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들은 인어를 빼앗으려 한다. 현실은 동화의 결말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샤코는 그들의 요구에 샷건으로 응답한다. 그것이 자신과 인어, 두 존재가 서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실 이 인어는 실재했을까? 혹은, 이 모든 것은 샤코의 환상 혹은 죄책감이 만든 허상이었을까? 드라마는 끝까지 이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샤코에게 이 인어는 단지 괴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상처받은 자를 위한 거울이었고, 뿌리내릴 곳 없는 존재들을 위한 유일한 위로였다.

이야기의 마지막, 샤코는 현실을 등지고 다시 ‘환상 속 바다’로 뛰어든다. 그 끝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행복한 동화가 아닌 새드엔딩이다. 그럼에도 그는 선택한다. 그저 속해 있지 못한 세상보다, 자신을 인정해 준 환상을.


작품 해설

《몬스터랜드》의 팔라시오스 편은 단순히 인어와 인간의 만남을 그리는 환상물이 아니다.
그것은 소속되지 못한 자, 버려진 자, 들리지 않는 자의 이야기다.
샤코는 이민자의 아들이자, 기름 유출로 생계를 잃은 ‘배제된 자’였다.
그가 만난 인어는 그 어떤 괴물보다도, 인간의 본성과 닮아 있었다.

몬스터랜드 시리즈는 각 에피소드마다 괴물을 등장시키지만, 그 괴물은 우리 내면의 그림자다.
때로는 고통을 비추고, 때로는 죄책감을 드러내며, 때로는 위로의 형태로 다가온다.
팔라시오스의 인어는 그 중 가장 섬세하고도 가슴 아픈 존재로,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현실”을 묵묵히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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