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신혼 첫날밤, 시댁의 전통이라는 ‘숨바꼭질’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그저 놀이인 줄 알았던 게임은 실제 생존을 건 살인 의식이었다. 영화 『레디 오어 낫 (Ready or Not, 2019)』은 공포와 블랙코미디, 그리고 사회풍자까지 담은 고전적인 생존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1. 결혼의 대가, ‘게임’이라는 이름의 살육 의식
주인공 그레이스는 재벌 가문인 르도마스 가의 아들 알렉스와 결혼하며 마치 동화 같은 인생의 시작을 꿈꾼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호화로운 결혼식이 아닌,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게임’이었다. 그레이스는 시가의 대저택에서 신혼 첫날밤을 맞이하며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선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고, 크게 긴장하지 않은 채 단순한 통과 의례라고 여긴다. 그녀가 뽑은 게임은 바로 ‘숨바꼭질’. 문제는 이 게임이 단순한 놀이나 테스트가 아닌, 그녀를 죽이기 위한 살인의식이었다는 점이다.
르도마스 가문은 고대의 악마와 계약을 맺은 가문이다. 조상 대부터 이 계약을 통해 막대한 부와 성공을 누려왔고, 그 대가로 가문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게 될 경우 반드시 '죽음의 게임'을 치러야 한다. 이 게임에서 신입 구성원이 살아남지 못하면 가문은 안전을 보장받는다. 반대로 게임을 거부하거나 실패할 경우, 가족 전체가 몰살당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레이스가 아무것도 모른 채 뽑은 게임은 바로 이 '진짜 숨바꼭질'이었다.
가문은 해가 뜨기 전까지 그녀를 찾아 죽여야 하고, 그녀는 들키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곧 진실을 알게 되고, 순수하고 행복했던 결혼식은 순식간에 목숨을 건 생존 레이스로 바뀌게 된다. 그녀는 드레스를 찢고, 신발을 버리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며 궁지에 몰린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강해지고, 단순한 피해자에서 능동적인 생존자로 변모해 간다.
무엇보다 관객이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그레이스가 단순히 ‘도망치는 여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싸움을 주저하지 않으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냉정한 판단력을 보여준다. 그러한 주체적인 행동은 영화 전반에 걸쳐 블랙코미디적인 풍자를 더욱 극대화하며, 단순한 스릴러 그 이상을 만들어낸다.
2. 악마와의 계약, 광기의 가족 그리고 생존을 향한 사투
르도마스 가문의 가족들은 겉으로는 세련되고 예의바른 부자 집안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광기 어린 신념에 사로잡힌 이교 집단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세대에 걸쳐 악마와의 계약을 신봉하고 있으며, 그 계약을 어기면 온 가족이 끔찍한 죽음을 당한다는 공포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래서 그레이스에게는 도망칠 수 있는 출구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가족들은 제각기 비열하고 우스꽝스럽다. 누군가는 망설이고, 누군가는 무자비하게 그녀를 추적한다. 특히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가장 적극적으로 그녀를 죽이려 하고, 반면 알렉스의 형 대니얼은 갈등하며 중간에서 그녀를 돕기도 한다. 영화는 이 ‘가족’이라는 구조를 통해 전통의 허상, 상속된 악, 가부장제의 폭력성 등을 블랙코미디로 비틀어낸다.
알렉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구하려 하지만, 결국 가문의 운명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선택을 강요당한다. 그는 점점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며, 그녀를 죽일 수밖에 없는 입장에 몰리게 된다. 반면, 그레이스는 매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신체적 한계를 초월하는 강한 생존력을 보여준다. 그녀는 다친 손으로 쇠창살을 부수고, 못이 박힌 사다리를 기어오르고, 결국 도끼와 총까지 사용하며 이 광기를 정면으로 돌파해나간다.
특히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점점 더 고어하고 잔혹한 묘사를 담는다. 핏빛 드레스를 입고 숨바꼭질을 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은, 마치 웨딩드레스를 입은 복수의 여신처럼 상징적이다.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이 **‘공포 속에서 태어난 여성 서사의 힘’**에 있다. 피해자였던 그녀는 결국 스스로를 구해내고,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결단과 용기로 이 난국을 돌파한다.
3. 전통을 파괴하는 마지막 복수, 그리고 역설적 해방의 의미
영화의 마지막 30분은 거의 카타르시스의 연속이다. 가족들은 그레이스를 제물로 바치려다, 예기치 않게 해가 떠오르면서 몰살당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피가 터지고, 몸이 폭발하며, 미신에 의존하던 그들의 말로는 처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관객은 이 장면에서 공포가 아닌, 짜릿한 해방감과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 모든 위선과 전통, 부의 상징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돈도 아니고, 신분도 아니고, 바로 인간의 의지와 생존 본능이었다. 알렉스조차도 그레이스를 다시 품으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순수한 신부가 아니다. 그를 차갑게 외면하고, 결혼 반지를 빼던 그 장면은 단지 관계의 단절이 아닌, 그녀가 이제 완전히 새로운 삶의 주인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고전적인 ‘살육 게임’의 틀을 따르면서도, 사회비판과 성역할, 계급 갈등, 여성 주체성 등의 주제를 아주 감각적으로 녹여낸다. 특히 결말부에서 가족들이 ‘정말 죽을까?’라는 긴장감은, 결국 악마의 존재가 사실이었는지 아닌지를 끝까지 애매하게 두는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관객에게 끝없는 상상을 남긴다.
『레디 오어 낫』은 단순한 서바이벌 스릴러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 부와 권력의 오만, 그리고 진정한 자유와 자아를 찾아가는 여성의 성장 서사를 극단적인 공포 안에 녹여낸 수작이다.
무섭고 잔혹하지만, 이상하게 통쾌하다.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주는 최고의 한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