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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래빗 런

by 영화보자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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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외면한 채 살아가던 한 여성이 딸의 이상 행동을 계기로 다시 마주하게 된 ‘엄마’와의 기억. 망각하고 싶은 상처와 기억의 퍼즐이 서서히 드러나며 섬뜩하고도 서늘한 공포가 관객을 압도한다. 진실과 환각 사이, 경계가 무너지는 이 작품의 결말은 상상 그 이상이다.

영화 포스터

1. 무너진 기억과 봉인된 진실, 어긋난 모녀의 시작

영화는 유치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로 시작되며, 일상적인 행복의 모습 뒤에 감춰진 무언가를 암시한다. 주인공 세라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듯하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연락을 끊은 어머니의 요양원에서 전화가 걸려오며 갈등의 서막이 열린다. 그녀는 이를 무시한 채 딸 미아의 생일 준비에 몰두하지만, 붉은 눈의 새하얀 토끼라는 기이한 존재가 그녀의 앞에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급변한다. 이 기묘한 존재는 단순한 환상인지, 아니면 억눌러온 기억의 파편인지 관객의 의문을 자아낸다. 세라는 이 모든 기이한 현상에 불안을 느끼며, 딸의 일곱 번째 생일파티 중에도 어딘지 모르게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지 못한다. 이후에도 그녀는 요양원으로부터 오는 연락을 회피하고, 딸 미아의 낯선 행동들에 당황하게 된다. 미아는 이유 없이 말을 듣지 않거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세라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특히, 세라가 창고에서 과거의 유품들을 확인하려는 순간 나타난 미아의 말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이를 계기로 세라는 더욱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 혼란은 과거 동생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사진, 미아의 얼굴에 나타난 생소한 상처로 구체화된다. 미아는 자신이 죽은 이모 앨리스라고 말하고, 외할머니 조앤을 만나고 싶어 한다. 결국 세라는 망설임 끝에 미아를 데리고 조앤을 찾아간다. 이 순간부터 영화는 불안감과 의심, 억눌린 기억이 뒤엉키며 본격적인 심리 공포의 무대로 나아간다.

2. “우린 함께였잖아” — 죄책감과 기억의 그림자가 몰려오다

조앤과의 만남은 세라에게 묘한 불쾌감을 안긴다. 조앤은 손녀 미아를 처음 보는 순간에도 마치 오래 전부터 그리워했던 가족을 다시 만난 듯한 태도를 보이며, 그 상황은 보는 이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을 전한다. 세라는 이런 장면을 마주할수록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며 혼란에 빠진다. 과거 어머니와의 사이, 동생 앨리스와의 관계, 그리고 미처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잘못들이 떠오르며 그녀는 점점 불안정한 상태로 변해간다. 미아는 세라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계속하며, 그림 속에 가족의 파편들을 담아낸다. 이 그림들은 단순한 낙서처럼 보이지만 세라가 숨겨둔 기억과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미아가 그린 그림 속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죽은 이모가 함께 등장하며,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유아적 상상이 아닌 깊은 진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세라는 과거를 마주하고자 어릴 적 살던 집으로 향한다. 집 안의 구조, 앨리스의 방, 그 모든 공간은 세라에게 지워지고 싶었던 기억을 되살리는 트리거가 된다. 세라는 점점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으로 들어가게 되고, 미아 역시 마치 과거를 체험하듯 점점 ‘앨리스’의 정체성을 덧입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기억이 존재를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인간 내면에 숨겨진 죄책감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려낸다. 미아의 상처는 단순한 사고의 결과가 아니며, 그녀의 존재는 세라가 지우고자 했던 과거와 다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난다.

3. 공포는 외부에 있지 않았다 — 모든 진실이 드러난 결말

결국 세라는 과거와 마주하고자 외출을 감행하지만, 미아가 사라지면서 상황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미아를 찾아 헤매는 세라는 집 안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전화기를 붙잡고 괴로워하며 혼란을 극대화시킨다. 이 시점부터 세라의 정신은 완전히 붕괴 직전에 도달하며, 관객 또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놓치게 된다. 미아와 함께 사라진 듯한 이모 앨리스의 존재는 단순한 환상인가, 아니면 죄의식이 만들어낸 실체인가? 영화는 이에 대해 직접적인 설명을 피한 채, 마지막 장면에서 강렬한 은유로 끝맺는다. 절벽 위를 함께 걷는 미아와 앨리스의 실루엣은, 세라가 저지른 과거의 실수와 용서받지 못한 감정이 두 형태로 실현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미아가 말없이 세라를 외면하고, 그녀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집 안을 맴도는 모습은 감정적 공허함과 외면의 공포를 극대화시키며 마무리된다. 영화는 전형적인 점프 스케어나 유혈 낭자한 장면이 아닌, 조용하고 무서운 공포로 접근한다. ‘소리 없는 공포’는 세라라는 인물의 심리를 천천히 조여오며, 관객들 역시 어느 순간 세라의 시선과 일체화된다. 결국 영화는 “진짜 공포는 타인이 아니라, 내가 외면해온 과거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조차 숨겨질 수 없는 감정의 응어리, 그리고 아이에게까지 대물림되는 상처의 무게를 통해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 깊은 정서적 울림을 남긴다.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의 과거와 관계를 되돌아보게 되는 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런 서늘한 여운이야말로 이 영화가 진정한 공포영화로서 성공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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