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사이 기적처럼 쌍둥이를 임신한 수녀. 하지만 그녀의 뱃속에 있는 두 생명은 ‘빛’과 ‘어둠’, 즉 메시아와 적그리스도라는 예언과 맞물립니다.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과 뒤엉킨 운명 속, 결국 누군가 죽어야만 하는 참혹한 결단이 찾아오고 마는데... 충격적인 결말까지 함께 알아봅니다.
🌑 1. 신의 기적인가, 저주의 씨앗인가 – 쌍둥이를 품은 수녀
러시아의 한 외딴 수녀원. 평범했던 수녀 율리아는 어느 날 등 피부가 벗겨진 시체들을 나열하며 신비한 문양을 모으는 자들의 환영을 꿉니다. 악몽이라기엔 너무 생생한 꿈에 시달리던 그녀는, 급기야 뱃속에서 생명을 느끼고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검진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율리아는 임신 중이었고, 그것도 쌍둥이였던 것이죠.
하지만 그녀는 그 어떤 남성과의 관계도 없었습니다. 곧 수녀원 내부는 뒤숭숭해지고, 오랜 고문서에 정통한 신부 루소는 한 고대 예언서를 발견합니다. 예언 속에는 '한 순결한 여인이 빛과 어둠을 동시에 잉태하고, 태어날 그 둘 중 하나는 세상을 구하고, 하나는 파괴할 것이다'라는 섬뜩한 내용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이 믿을 수 없는 소문은 단순한 예언서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과거 수녀원이 지켜온 신비로운 그림들과 상징들이, 율리아의 임신과 너무도 정확히 맞아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신은 율리아를 선택한 것일까요? 아니면 사탄이 그녀의 자궁을 타락시킨 것일까요?
⚔️ 2. 누가 살아남아야 하는가 – 선택받은 자들의 고뇌
율리아는 그녀를 돕기 위해 부른 남자, 다니엘을 기다립니다. 그는 과거 사제였지만 신에 대한 회의로 성직을 포기하고, 가족과 함께 살며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율리아의 요청이, 그리고 그 이면의 사연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직감한 그는 다시 사제복을 입고 러시아로 돌아옵니다.
그를 기다린 것은 단순한 출산이 아닌, 세상의 운명을 가를 판단이었습니다. 신부들은 율리아의 뱃속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악’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반해 다니엘은 생명은 신의 뜻이라며 단죄를 거부합니다.
결국 율리아와 다니엘은 수녀원을 탈출하고, 캐나다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그들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신부들은 뒤를 쫓고, 율리아는 기차 안에서 쌍둥이를 출산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도망을 계속하는 동안, 다니엘의 마음속에도 흔들림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정말 이 둘 중 하나는 악일까? 그렇다면 누가?’
🕳️ 3. 끝없는 망설임, 그리고 파국 – 누가 적그리스도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두 아이를 둘러싼 상황은 더 혼란스럽고 잔혹해집니다. 과거 율리아의 집안은 정화되지 않은 땅에서 대규모 사업을 벌이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고, 이에 얽힌 집단은 율리아와 아이들을 향해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신부 루소는 귀에 들리는 목소리에 시달립니다. ‘한 명을 죽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구원받는다...’
심지어 다니엘조차도 끝없이 흔들립니다. 신의 뜻이 무엇인지, 누가 선이고 악인지 알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 역시 어느 순간 두 아이 중 하나를 데려가 총을 들게 됩니다. 하지만 율리아는 다니엘보다 한발 먼저 총을 쏘며 아이를 지켜냅니다. 다니엘은 쓰러지고, 그들의 피는 바닥을 적십니다.
영화의 마지막, 살아남은 율리아는 두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그 둘이 정말 메시아와 적그리스도인지, 혹은 그 모든 이야기가 허상일 뿐인지, 영화는 끝내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율리아는 그 어떤 신도 아닌 자신의 신념과 사랑으로 선택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 영화 ‘딜리버스’는 종교적 모티프와 예언, 생명에 대한 깊은 질문을 공포 장르로 풀어낸 이색 작품입니다. 초반부의 긴장감과 중반 이후의 도망, 그리고 결말부의 파국은 마치 한 편의 현대판 신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죠. 약간의 호불호가 있겠지만, 철학적 고민과 고어적 상징을 감내할 수 있다면 꽤 흥미로운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