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금식, 기적과 죄의식. 영화 **〈더 원더(The Wonder)〉**는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된 한 소녀와, 그 진실을 마주한 한 여성의 선택을 따라간다. 플로렌스 퓨의 절제된 연기는 이 영화의 공기를 지배하고, 조용한 화면 속에서 가장 잔혹한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공포 영화가 아니라, 신념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결말까지 포함한 해석으로, 이 불편한 아름다움을 정면에서 바라본다.

믿음은 언제 죄가 되는가
영화 **〈더 원더〉**는 처음부터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데, 이미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감각이 흐른다. 주인공 립 라이트는 간호사다. 그녀는 ‘몇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살아 있는 소녀’를 관찰하기 위해 잉글랜드 시골 마을로 파견된다. 목적은 단순하다. 기적인지, 사기인지, 아니면 착각인지.
마을 사람들은 소녀 애나를 성인처럼 떠받든다. 그녀의 금식은 신의 은총이며, 고통은 신앙의 증거다. 립은 처음엔 이 모든 것을 의심한다. 그러나 애나는 너무 차분하고, 너무 진실해 보인다. 거짓말을 하는 아이의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이 세계를 이미 받아들인 사람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공포는 여기서 시작된다.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위험할 수 있다는 점.
플로렌스 퓨, 침묵으로 연기하다
플로렌스 퓨의 연기는 과장되지 않는다. 그녀는 울부짖지 않고, 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대신 침묵한다. 관찰한다. 삼킨다. 립이라는 인물은 과거에 아이를 잃은 상처를 지녔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를 죽게 내버려 두는 어른들’을 견딜 수 없다.
그러나 이 마을의 어른들은 확신에 차 있다. 아이의 상태가 나빠져도, 그 누구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신부도, 부모도, 지역 위원회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의 생명이 아니라 이야기다. 기적이 유지되는 것.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
립은 점점 고립된다. 의학은 이곳에서 불경이 된다. 질문은 모독이 된다. 그리고 영화는 아주 천천히, 잔혹한 진실에 다가간다.
진실은 초자연이 아니었다 (결말 해석)
결정적인 순간, 립은 깨닫는다.
애나가 완전히 굶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애나의 어머니는 매일 밤, 입맞춤을 통해 씹은 음식을 아주 소량씩 전달해 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신앙이라는 명분으로. 애나는 살아 있었지만, 동시에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더 끔찍한 진실.
애나의 금식은 속죄였다.
그녀는 죽은 오빠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죄책감 속에서, 스스로를 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선택한 적 없다. 선택당했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립은 결단한다.
진실을 폭로하는 대신, 이야기를 바꾼다.
애나를 ‘죽은 아이’로 만들고, 새로운 이름으로 탈출시킨다. 신의 기적이 아니라, 인간의 거짓말로 아이를 살린 것이다. 모든 기록을 불태우며, 립은 신념보다 생명을 선택한다.
이 영화가 진짜 무서운 이유
〈더 원더〉는 반전 영화가 아니다.
놀라게 하지 않는다. 대신 깨닫게 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초자연이 아니라,
가장 잔인한 폭력은 신념이라는 확신이다.
마지막에 영화는 세트장을 드러낸다.
이야기는 만들어진 것이며, 우리가 본 것도 하나의 연출임을 말하듯. 그러나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아이는 믿음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된다.
그 누구의 구원 서사에도, 희생물로 쓰여서는 안 된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올해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중, 이토록 숨 막히게 정직한 영화는 드물다.
〈더 원더〉는 끝나도,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의 고통 위에 어떤 믿음을 세우고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