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죽음의 도로』는, 일가족이 낯선 도로에서 경험하는 끔찍한 사건을 다룹니다. 평범한 여행이 공포의 늪으로 변하며, 도로 위에 숨겨진 존재와 시공간의 왜곡 속에서 가족은 하나둘 사라지고 정체성을 잃습니다. 초현실적 공포, 반전, 그리고 인간 내면의 혼란을 치밀하게 그린 이 작품은, 피 한 방울 없이도 관객을 서늘하게 만들며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1. 끝없이 반복되는 낯선 길 –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진다
이야기는 해링턴 가족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친척을 방문하는 평범한 여정에서 시작된다. 모두가 피곤한 나머지 차 안에서 잠에 들고, 아버지 프랭크 역시 조는 운전을 하다 맞은편 차량과 충돌할 뻔한다. 가족은 놀라서 깨지만, 이미 차는 전혀 기억에 없는 낯선 도로에 들어서 있다. 고속도로 대신 지름길을 택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길은 아무리 달려도 끝이 없고, 주변엔 도무지 익숙한 풍경이 없다. 그때 길가에 기묘한 오두막과 흰 옷을 입은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말이 없고, 아기를 안고 있다. 가족은 여인을 차에 태우지만 곧 그녀가 썩은 아기의 시체를 건네며 공포가 시작된다. 브레드는 끌려가고, 가족은 검은 차를 추격하지만 그 끝에는 죽은 브레드의 시신만이 남아 있다. 시계는 멈춰있고, 공간은 반복된다. 차를 몰고 가다 보면 또다시 아까의 오두막이 등장하고, 또다시 유모차가 길 한복판을 막고 있다. 마치 시간과 공간이 원형으로 구성된 미로 속에 들어선 듯, 그들은 점점 이성의 끈을 놓아간다. 프랭크는 리차드에게 시신을 옮기라 하고, 메리언은 검은 차에서 브레드가 끌려가는 환영을 본다. 점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사라지고, 가족 간의 관계까지도 뒤틀려 간다. 딸은 임신을 고백하고, 아들은 마약을 했다고 털어놓으며 가족의 민낯이 드러난다. 이 도로는 단지 길이 아니라, 숨기고 있던 죄와 과거, 그리고 억눌린 감정들이 형태를 이루는 심리적 지옥이다. 반복되는 유모차, 반복되는 오두막, 그리고 같은 시계. 이 모든 현상은 관객에게 불안과 혼란을 심어주며, 영화의 공포는 점점 고조된다.
2. 뒤틀린 진실 – 가족의 붕괴와 인물의 정체성 붕괴
이 지옥 같은 도로에서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정체성’이다. 아버지 프랭크는 가족의 리더로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지만, 로라는 그가 진짜 남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들 리차드의 이름도 실은 ‘마이클’이며, 프랭크의 본명도 ‘앨런’이라는 말이 나온다. 관객은 이쯤에서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들은 정말 가족이 맞는가? 이 여정은 실존하는가? 로라는 결국 프랭크에게 총을 쏘고, 그는 쓰러진다. 정신을 놓은 듯 행동하던 로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고, 갑자기 차에서 뛰어내린다. 프랭크는 정신이 붕괴된 상태로 엽총을 들고 검은 차를 향해 총을 난사하지만, 돌아오는 건 정적뿐이다. 가족은 하나둘 사라져간다. 반복되는 이정표, 꺼지지 않는 전조등, 죽었어야 할 로라가 다시 등장하는 장면은 도로가 현실이 아닌 심리적 공간임을 암시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길, 같은 장소, 같은 시간. 이들은 죄의식과 후회의 미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결국 프랭크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고, 메리언은 아버지를 말리며 “이젠 당신만 남았어요”라고 말한다. 현실의 붕괴는 절정에 이르러, 그들은 도로를 가로질러 걸어가보지만 또다시 차가 있던 장소로 되돌아온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임을 암시한다. 오두막, 검은 차량, 썩은 아기, 낯선 여자. 이 모든 상징은 죄와 트라우마를 시각화한 장치로 작용하며, 관객의 정신도 영화 속 인물과 함께 조금씩 붕괴되어 간다.
3. 꿈인가 현실인가 – 충격의 결말과 남겨진 질문
결국 남은 것은 메리언이다. 그녀는 마지막 생존자로서, 정신이 반쯤 나간 채 도로 위를 헤맨다. 그리고 나무 위에 매달린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한다. 검은 차가 다시 등장하고, 낯선 이가 “너는 여기에 온 것이 아니야”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메리언은 병원 침대에서 깨어난다. 교통사고 후 유일한 생존자로 구조되었고, 의료진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하다 마주오던 차량과 충돌했다고 전한다. 죽은 여성과 아기 역시 확인되며, 영화는 ‘이 모든 것이 사고 후의 의식 속 환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담당 의사의 이름은 ‘헬렌 마르콧’. 이 이름은 도로명 ‘마르코시아’와 묘하게 겹친다. 게다가 의사 역시 시동이 꺼진 차에 탑승하려다, 지나가던 남자의 차량에 동승하게 되는데, 그 차는 다름 아닌 영화 전반에 걸쳐 가족을 괴롭힌 ‘검은 차’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단순히 한 사람의 악몽이 아니라, 반복되는 고통의 사이클이 누군가에게 다시 시작됨을 암시하며 소름을 남긴다. 메리언이 발견한 가족의 유품, 낯선 사람들의 시선, 반복되는 장소. 이 모든 요소가 그저 사고 이후의 혼란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교하고 구체적이다. 영화는 이 결말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진실을 마주했는가? 아니면 여전히 도로 한가운데에서 방향을 잃은 채 맴돌고 있는가? 『죽음의 도로』는 단순한 공포영화를 넘어,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을 비추는 심리적 스릴러로 남는다. 피 한 방울 없이도 이토록 끔찍하고 묵직한 공포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