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쿠쿠>는 알프스 산속 리조트로 이주한 17세 소녀의 불안과 공포를 그린다. 단순한 호러처럼 시작되지만, 정체불명의 존재와 뻐꾸기 종족의 비밀이 드러나며 이야기는 가족과 정체성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공포 속에서도 동생을 지키려는 언니의 절박함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서론
호러 영화는 언제나 긴장과 공포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그러나 모든 호러가 같은 무게를 가진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단순한 괴물이나 귀신의 출몰을 넘어,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두려움과 삶의 질문을 파고든다. 2024년 틸만 싱어 감독의 영화 <쿠>는 바로 그 범주에 속한다. 이 영화는 시각적 충격이나 순간적인 놀람보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울타리 속에서 피어나는 불안과 고립을 무대로 삼는다. 관객은 단순한 무서움이 아니라,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는 한 소녀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그런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이복동생 알마와 함께 알프스 산속의 리조트로 이주한다. 낯설고 차가운 공간, 믿을 수 없는 가족, 잃어버린 일상. 그레에게 새로운 삶은 도피가 아닌 감옥처럼 다가온다. 친구들과의 이별, 엄마의 빈자리, 아버지의 무심함은 그녀의 고립감을 더욱 짙게 만든다. 아직 애도의 과정조차 끝내지 못했는데, 현실은 그녀에게 무자비하게 새로운 역할을 요구한다.
관객은 이 서두에서 이미 불편함을 느낀다. 단순히 귀신이 나타나는 무대가 아니라, 삶의 가장 깊은 상처가 이야기의 토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은 이후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과 맞물리며, 단순히 공포를 느끼는 차원을 넘어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호러 장르가 ‘낯선 존재의 위협’이라는 공식 위에서 움직인다면, <쿠>는 그 낯섦을 ‘가족의 붕괴와 부재’라는 현실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처럼 영화의 서론은 공포와 동시에 감정적인 불편함을 함께 쌓아 올린다. 관객은 스스로도 모르게 주인공의 감정과 동일시하게 되고, 앞으로 이어질 사건에 휘말릴 준비를 하게 된다. 이는 호러 영화의 가장 강력한 장치이자, <쿠>가 가진 특별함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본론
리조트에서의 생활은 곧 불길한 전조로 가득 찬다. 그레는 우연히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며, 그곳에서 알 수 없는 현상을 마주한다. 여성 손님들이 이유 없이 구토를 반복하고, 검은 그림자 같은 존재가 그녀를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어느 날 정체 모를 여인에게 습격당한 그런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지만, 경찰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더 큰 충격은 가족조차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동생 알마의 발작이 그레 탓이라고 몰아붙이며, 그녀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그러나 사건의 실체는 단순한 괴담이 아니었다. 리조트 주인 니이의 배후에는 끔찍한 비밀이 숨어 있었다. 이곳은 ‘뻐꾸기 종족’이라 불리는 존재들의 번식 실험장이었던 것이다. 번식 능력이 없는 이들은 여성의 몸을 빌려 아이를 남기고, 인간 사회 속에 그 아이를 숨겨 기르게 했다. 그런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한다. 동생 알마 역시 그 희생 속에서 태어난 존재였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 순간 단순한 호러에서 탈피한다. 정체불명의 여인, 리조트의 비밀, 음모의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스릴러적 긴장을 주지만, 그 핵심에는 ‘가족의 의미’라는 주제가 놓여 있다. 알마가 뻐꾸기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혈연과 유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레가 선택해야 할 길을 분명히 한다. 그녀는 두려움 속에서도 동생을 지키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다.
숨 막히는 추격과 대치는 이어진다. 병원과 리조트를 오가며, 그레는 알마를 빼앗기지 않으려 사투를 벌인다. 때로는 낯선 이들의 도움을 받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선택하는 것은 동생을 품에 안는 언니의 본능이다. 총성이 울려 퍼지고, 수많은 위협이 뒤엉키는 절정 속에서도 그런 끝내 알마를 데리고 지옥 같은 공간을 벗어난다.
본론은 단순히 사건의 전개만이 아니라,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피로 맺어진 관계만이 가족인가? 혹은 끝내 지켜내려는 선택이 가족을 만든 것인가? 그레의 여정은 공포 영화 속 도망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가정의 의미를 붙잡으려는 처절한 발버둥으로 다가온다.
결론
<쿠쿠>는 틸만 싱어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호러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족과 정체성, 모성의 본질을 묻는다. 알프스라는 고립된 공간, 낯선 존재의 위협, 그리고 불안정한 가족 관계는 단순히 공포를 조성하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실’과 ‘부재’를 드러내는 무대다.
주인공 그레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무심함, 새어머니와의 갈등, 동생의 정체라는 연속된 위기 속에서 끝내 스스로 싸우는 주체로 성장한다. 두려움 속에서도 동생을 지켜내려는 언니의 선택은, 관객에게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가족은 주어진 피가 아니라, 지켜내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영화는 강렬히 말하고 있다.
또한 <쿠쿠>는 공포의 장르적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너머를 보여준다. 낯선 여인의 집요한 그림자, 병원에서의 숨 막히는 긴장, 총성과 추격이 이어지는 결말은 충분히 호러적 긴장을 주지만, 영화가 남기는 여운은 놀람이 아니라 ‘질문’이다.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가족을 위해 어디까지 싸울 수 있는가?”
결국 <쿠쿠>는 단순히 무서운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상실과 고립, 그리고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언니와 동생이 서로를 지켜내는 마지막 장면은, 피로 이어지지 않은 관계조차도 선택과 헌신으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호러를 넘어서는 울림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특별해진다.
따라서 <쿠쿠>는 공포 영화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긴장과 스릴을, 더 깊은 이야기를 찾는 이들에게는 인간관계와 가족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레의 사투는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안고 있는 삶의 두려움과 사랑을 상징하는 여정이었다. 이 영화는 결국 ‘가족을 지킨다’는 말이 가진 무게를, 가장 불편하면서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