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다크 워터

by 영화보자 2025. 7. 14.
반응형

양육권, 이혼, 빈곤, 그리고 귀신보다 무서운 현실. 영화 다크 워터는 공포의 탈을 쓴 인간 드라마였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 성장한 달리아가, 자신만큼은 딸을 지키고자 몸부림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스산함보다 더 깊은 여운이 남는다. 여운이 일주일을 넘기고, 문득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다크 워터의 제니퍼 코넬리

1. “그 집은 이상했어” — 현실이 공포보다 더 무서운 이유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며칠 동안 마음속 깊은 구석이 서늘했다. 귀신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눌렀던 재생 버튼은, 오히려 내가 오래도록 외면해왔던 감정의 뿌리를 건드렸다. 영화 속 주인공 달리아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 그런 그녀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필사적으로 지키고 싶었던 단 하나의 존재가 바로 딸 세시였다. 남편과의 이혼을 앞둔 상황, 법정에서 양육권을 주장하려면 안정된 주거 환경이 필요했다. 하지만 가진 것이라고는 얼마 안 되는 예산과 몇 통의 이력서뿐.

겨우 구한 낡은 아파트는 관리 상태가 형편없었고, 천장에서 물이 새고 엘리베이터는 귀신처럼 혼자서 10층에 멈춰 서곤 했다. 하지만 달리아는 물러설 수 없었다. 세시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불편도 감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노후된 건물이 아니었다. 어느 날, 옥상에서 소녀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이 발견된다. ‘나타샤’라는 이름표가 붙은 헬로키티 가방. 누군가 이 집에서 사라졌고, 그 사실이 묻힌 채 남아 있었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이상한 건 그뿐이 아니었다. 세시가 점점 알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향해 말을 걸고, "나타샤가 잊혀졌대"라고 말하는 아이.

나는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다. 귀신이 무서운 게 아니다. 관심받지 못한 아이가 상상의 친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 그리고 그걸 믿어버리는 엄마의 초조함.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너무 익숙한 감정이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옥상 어딘가에 가방 하나씩을 남겨두고 있는 건 아닐까?

2. “사랑받지 못한 기억이 만든 그림자” — 유년기의 상처는 자라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세시가 만들어낸 상상의 친구 ‘나타샤’는 점차 단순한 환상을 넘어선다. 그녀는 가방을 찾고, 이름을 부르고, 함께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화를 낸다. 그런 세시를 보며 달리아는 점점 불안해진다. 왜냐하면 자신도 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상상 속 친구에게 전부를 의지한다는 걸. 그리고 그 상상의 친구가 때로는 현실보다도 더 진실하다는 걸.

달리아는 자신이 겪었던 결핍을 세시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의 정신이 불안정하다며 양육권을 빼앗으려 하고, 그녀가 사는 집은 곰팡이와 누수로 가득했다. 결국 진통제를 들이켜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나날. 그 와중에도 세시는 계속해서 나타샤에 집착했고, 어느 순간 그 존재가 단순한 상상이 아닌 '실체'처럼 느껴졌다.

결국 드러난 진실은 너무도 끔찍했다. 나타샤는 정말 존재했던 소녀였고, 부모로부터 방치당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진 아이의 마지막 기억이 되어버린 공간에, 지금의 세시와 달리아가 이사 온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나 역시 세상에 무심했던 적이 있었고, 관심을 가져야 할 누군가를 모른 척한 적도 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사라진다. 그 말이 왜 이토록 가슴을 찌르는지 알 수 없었다. 나타샤는 단지 귀신이 아니다. 누군가의 딸이었고, 우리가 외면한 사회의 한 조각이었다.

3. “그래도 나는 너를 지킬 거야” — 진짜 공포를 이겨내는 이름, ‘사랑’

결국, 달리아는 선택을 한다. 무너지는 집, 흔들리는 정신, 그리고 소송까지 불사하는 남편의 압박. 이 모든 걸 뒤로 하고 그녀는 세시를 위해 ‘한 발 물러서는’ 결정을 한다. 임대계약을 끊고, 그 집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욕조 속에서 세시를 씻기며 달리아가 속삭이는 그 말이 뇌리에 박혔다. 내가 부모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 모든 걸 걸고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마지막 순간, 나타샤의 영혼이 달리아에게 매달린다. "가지 마, 나랑 함께 있어줘." 그 부탁을 끝내 뿌리치며 그녀는 문을 나선다. 그리고 세시와 함께 어둠을 뚫고 집으로 돌아간다. "Let's go home." — 이 대사는 단순한 귀갓길의 알림이 아니다. 이는 상처와 망상, 공포를 모두 뒤로 하고 진짜 ‘가정’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았던 건, 헬로키티 가방도, 공포스런 장면도 아니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영화보다 현실에서 훨씬 더 공포스럽고, 또 슬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