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던 가장 깊은 그리움을 흔들어 놓는다. 영화 **〈넥스트 엑시트〉**는 그 금단의 문턱 앞에 선 두 사람, 상처로 얼룩진 로즈와 오래된 슬픔을 농담으로 가린 테디의 느리고도 고요한 여정을 따라간다. 죽음 너머에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 문을 두드릴까. 이 영화는 죽음의 세계를 보여주는 대신, 살아 있고 싶다는 마음의 본체를 비추며 우리 내면에 웅크린 그림자를 꺼내놓는다. 그 잔잔한 울림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남아 우리의 가슴을 두드린다.

죽음을 향해 떠나는 길,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로즈가 처음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나는 그녀의 눈에 오래 묵은 피로와 습관처럼 굳어진 체념이 동시에 깃들어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죽은 엄마의 모습을 계속해서 목격했다. 그것은 환영이었고, 동시에 외면할 수 없는 고통의 잔상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죽은 이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라이프 비욘드’의 실험에 참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출발부터 꼬여버린 여정은 테디라는 낯선 남자를 옆자리에 태우며 시작된다. 그는 유쾌한 말로 어색함을 덮었지만, 그 속에 숨긴 절망은 금세 드러났다. 스스로 생을 끝낼 용기도 없어서 타인의 손을 빌려 죽으려 한다는 그의 고백.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나는 저릿한 침묵을 마주한 것처럼 숨이 멎었다.
두 사람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서로에게 끌렸다.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속내를 털어놓고, 때로는 서로를 밀어내듯 농을 던졌다. 그리고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건들은 자꾸만 그들의 상처를 긁어내며 진실을 드러냈다. 신부를 만나 고해성사를 하듯 죄책감을 내놓는 장면, 서로의 지난 실패를 농담처럼 나누던 대화. 그 모든 순간은 ‘죽으러 가는 여행’이라기보다 오히려 살아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는 과정처럼 보였다.
특히 로즈의 술 취한 고백들은 그동안 얼룩처럼 번져 있던 그녀의 자책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언니의 삶을 질투했던 어린 날의 실수, 형부와의 파국 같은 순간, 그리고 전화조차 받지 않았던 엄마의 마지막 날들. 그녀가 등에 짊어진 죄책감은 너무 무거워서, 살아가는 것보다 죽음을 향해 걷는 것이 더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동안은 죽음보다 삶이 더 가까워 보였다. 술잔을 부딪히며 흐느끼던 밤, 테디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던진 마침내의 외침, 그리고 그 숨죽인 뒤엎음. 나는 이들이 결국 죽음이 아니라 서로의 생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서로의 그림자를 비추며, 마음의 가장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가다
여정이 깊어질수록 로즈와 테디는 어쩔 수 없이 서로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게 된다. 테디는 오래전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마주하고, 그 앞에서 조각난 감정들이 눈물처럼 터져 나왔다. 분노와 그리움이 뒤섞인 그의 독백은 가벼운 농담 뒤에 숨겨져 있던 진짜 얼굴이었고, 로즈는 그 무너짐을 아무 말 없이 받아주었다.
그리고 로즈 역시 자신의 뿌리 깊은 상처와 마주했다. 언니와 형부 사이에서 벌였던 실수, 질투와 외로움 사이에서 흔들리던 지난날들. 그녀는 언니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지만 말문을 열기만 하면 또다시 누군가를 다치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대신 거짓된 행복을 말하며 언니를 안심시키는 길을 택했다. 그것은 어설픈 선의였지만, 동시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고백을 들여다보며, 두 사람은 이상할 만큼 서로에게 기댔다. 마치 오랫동안 짙은 안갯속에 갇혀 있던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얻게 된 것처럼. 죽고 싶어 떠난 길에서 서로의 생을 다시 발견하는 아이러니는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테디는 점점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키웠다. 로즈 역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갈망을 느꼈다. 하지만 목적지인 샌프란시스코가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선택은 더욱 잔혹한 무게를 갖게 된다.
테디는 남고 싶었고, 로즈는 떠나고 싶었다. 두 사람의 마음은 점점 어긋났고, 결국 그 어긋남은 실험실 앞에서 절정에 이른다.
로즈는 마침내 사후세계 실험을 준비했고, 테디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마지막까지 울부짖었다.
“단 10분만 생각해 줘.”
“너는 살아도 돼.”
하지만 약물은 이미 로즈의 혈관 속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마주한 진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얻은 한 줄기 빛
약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로즈는 어둡고 낯선 공간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죽은 엄마의 모습이 나타났고, 그녀는 울음처럼 쏟아지는 죄책감을 엄마에게 쏟아냈다. 그러나 그 순간 드러난 진실은 너무나도 잔혹하면서도 따뜻했다.
그동안 그녀가 ‘엄마’라고 믿었던 존재는 실제로는 자기 자신이었다.
슬픔의 환영을 버티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마음이 투영된 또 다른 자아.
그리고 그 자아는 로즈를 껴안으며 속삭였다.
“널 용서해 줄 사람은 오직 너뿐이다.”
그 순간 로즈는 마침내 자신을 직면했고, 그제야 오래전부터 미뤄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 시간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한 사람, 테디였다.
정신을 차린 로즈는 테디의 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세상에서 가장 미약한 의지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가장 강렬한 생의 백기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품 안에서 오랫동안 흔들렸다.
죽음이 아니라, 삶의 무게 속에서.
그리고 영화는 조용히 그들의 재탄생을 지켜보며 막을 내린다.
〈넥스트 엑시트〉는 죽음너머의 세계를 탐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죽음의 문턱까지 걸어가야만 비로소 깨닫게 되는 생의 이유,
그 고요하고 잔잔한 진실을 응시하는 영화다.
우리는 언제나 죽음의 의미를 묻지만,
이 영화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그리고 답은 단순하면서도 잔인하다.
절망 속에서도 우리를 구해줄 사람은 결국 우리 자신뿐이라는 것.
그렇게 영화는 죽음에서 시작해 삶으로 끝나는 아주 길고도 섬세한 여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