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브라운》은 노년의 외로움 속에서도 약자를 지키기 위해 나선 전직 해병대원의 이야기다. 병든 아내, 살해당한 친구, 방관하는 사회 속에서 결국 스스로 정의의 총을 들게 되는 해리 브라운의 이야기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도시 빈곤과 청소년 범죄, 정의의 부재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1.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동네에서 혼자 남은 노인
영화의 시작은 조용하고 평범한 노년의 일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해리 브라운(마이클 케인)은 한때 국가를 위해 복무했던 해병대 출신이지만, 지금은 병상에 누운 아내를 간호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은퇴 노인이다. 그의 삶은 조용하지만 쓸쓸하고, 무엇보다도 사회로부터 완전히 잊혀진 인간처럼 보인다. 해리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아내를 보러 병원을 찾지만, 지하도를 통과해야 하는 경로는 동네의 갱단들이 장악하고 있어 늘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거기엔 명확한 공포가 있다. 단순히 거칠고 반항적인 아이들이 아닌, 무차별 폭력과 마약, 살인이 일상인 십대 갱단이 판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해리는 침묵한다. 무기력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무능하고, 지역 사회는 무관심하다. 그나마 이웃 레너드와 함께 나누는 대화가 유일한 위안이지만, 그조차도 갱단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레너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마약 거래에 분노하고, 해리에게도 “이제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하지 않겠냐”는 식의 섬뜩한 이야기를 꺼내지만, 해리는 여전히 침묵을 택한다. 그러나 그 침묵은 아내의 죽음, 그리고 곧이어 친구 레너드가 갱단에게 살해당하며 무너진다.
아내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자신, 친구의 죽음을 전해 들으며 절망에 빠진 해리는 병원 복도에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정의는 스스로 지키는 수밖에 없다는 결단, 바로 이 지점에서 평범했던 노인은 전직 해병으로 다시 돌아가며, 갱단과의 조용한 전쟁을 준비하게 된다. 그는 총을 구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자신이 알던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때부터 해리 브라운이라는 인물이 단순한 복수자가 아닌, 사회적 방관 속에 폭력을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된 인물로 격상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내포한다.
2. 경찰이 못한 정의, 노인이 대신하는 조용한 전쟁
해리는 총기를 불법으로 구매하기 위해 마약상과의 위험한 거래를 감행한다. 그러나 그곳은 단순한 총 밀매상이 아닌, 여성들을 마약에 중독시켜 성적으로 이용하는 끔찍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해리는 마약상과 그의 공범을 처단하고, 납치된 여성을 구출한 후 병원에 보내는 방식으로 첫 복수를 완성한다. 이 장면은 단순히 ‘폭력에는 폭력’이라는 메시지를 넘어서, 가장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범죄와의 전면전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일은 역설적으로 경찰 수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해리의 행동은 매우 치밀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졌기에 경찰은 범인을 특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갱단이 다시 거리를 점령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매일 밤마다 지하도를 감시하고, 갱단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며 다음 타겟을 노린다. 특히 레너드를 죽인 범인 중 하나인 ‘마키’를 미행해 살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청소년들의 실체를 목격하고, 그들의 핸드폰 영상 속에 담긴 참담한 증거들을 본 뒤 더욱 큰 분노에 사로잡힌다. 이 장면은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폭력을 소비하는 청소년 문화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이런 해리의 복수는 그를 점점 사회로부터 고립시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막아야 하는 경찰 중 일부는 그의 행동에 공감하고 존경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경찰관 ‘프레임’은 해리의 고통과 목적을 이해하고 그를 도우려 하지만, 조직 내 상사는 해리에게만 집착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수사에서 배제한다. 영화는 이처럼 진짜 범죄를 쫓는 경찰이 배제되고, 시스템은 정의를 가로막는다는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그려낸다.
결국 해리는 병원에 입원했지만, 다시 탈출해 마지막 작전을 준비한다. 갱단은 이미 동네를 완전히 장악했고, 주민들은 경찰의 대응에 불만을 품고 무력 충돌까지 벌인다. 이 모든 와중에도 해리는 혼자, 다시 전장으로 향한다. 그가 술집에서 마주한 갱단 대장 ‘노’와의 마지막 대결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잊힌 국가의 전사’와 ‘현대 범죄 사회의 상징’이 맞붙는 이념적 결투처럼 그려진다. 해리는 싸움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동네를 구해낸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통쾌한 승리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는 상처투성이로 쓰러지고, 사회는 여전히 문제투성이다.
3. 복수 그 이상의 이야기, 노인의 총이 겨눈 것은 '우리 모두'
《해리 브라운》이 단순한 액션 영화나 복수극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가 다루는 폭력의 근본 원인과 사회 시스템의 붕괴,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해리의 총이 겨눈 대상은 단순한 갱단만이 아니다. 그 총은 무능한 경찰, 무관심한 사회, 그리고 이 모든 폭력을 방관해온 우리 자신을 향해 있다.
해리는 단순히 정의감에 불타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인간적인 고뇌와 슬픔을 안고 있으며, 스스로가 폭력에 젖어들고 있다는 자각 또한 한다. 그는 수많은 밤을 불안에 떨고, 자신의 행동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이 영화가 다른 복수극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폭력이 정의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 폭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망. 이것이 해리 브라운의 진짜 이야기다.
영화는 끝내 갱단이 소탕된 후, 다시 평온을 찾은 동네를 비추며 끝난다. 하지만 그 평온이 진짜 평화인지, 아니면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일지에 대한 확답은 없다. 해리는 어쩌면 지금도 다시 일어나 총을 들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관객은 묻게 된다. 과연 우리는,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이 사회를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해리 브라운》은 단순한 노인의 복수극이 아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무시해 온 ‘정의의 마지막 불씨’였으며, 그가 쏜 총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경고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