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피렌체의 괴물은 수십 년에 걸쳐 반복된 연쇄 사건을 좇으며, 어둠 아래 숨겨진 이탈리아 사회의 민낯을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드러낸다.
한적한 시골 도로에서 시작된 비극은 가부장적 문화, 무너진 가족, 누적된 오해와 진실의 불균형을 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폭풍으로 번져간다.
단순한 범죄 기록이 아니라, 한 시대의 무의식과 침묵을 파헤치는 서늘한 통찰로 가득한 작품이다.
모든 증언이 서로를 반박하고 교차하는 구조는 보는 이를 끝내 놓아주지 않으며, 진범의 실체가 흐릿한 채 남는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잔혹한 현실을 더욱 또렷하게 비춘다.

고요한 들판 위로 떨어진 첫 번째 그림자
작품의 첫 장면은 소름보다는 고요함으로 시작된다.
피렌체 외곽의 한적한 들판, 사람의 발길이 끊긴 어둑한 길가, 그리고 자동차 안에서 작은 행복을 나누던 한 커플.
그 평온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시리즈는 마침내 시대의 깊은 상처를 열어젖힌다.
1970년대 이탈리아는 급격한 성장 속에서 삶의 균열이 커져가던 시기였다.
젊은 연인들은 집에서 눈초리를 받지 않기 위해 차 안을 선택했고, 그 은밀한 공간은 어느 날부터 누군가의 표적이 된다.
이 시리즈는 바로 그 틈에서 시작한다.
사랑을 속삭이던 작은 공간이 갑자기 비극으로 뒤바뀌는 순간, 시청자는 ‘우연’이 아닌 ‘습관적인 악의’가 오랜 시간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검사실에 울리는 무거운 발자국, 침묵으로 둘러싸인 현장 사진들, 그리고 살아남은 단 한 사람의 희미한 증언.
이 모든 장면이 조용히 낮은음으로 울리며 이야기는 점점 더 깊은 과거로 향한다.
침묵과 오해, 비난과 두려움이 뒤섞여 만들어진 이 비극은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긴 그림자가 천천히 내려앉는 것에 가깝다.
그림자는 점점 넓어지고, 그 아래에서 한 가정이 금 가듯 흔들리고 있었다.
스테파노와 그의 아내 바르바라.
그들의 이야기는 연쇄 사건의 출발점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조각일 뿐이었다.
이 시리즈는 한 사건의 범인을 찾는 데 머물지 않고, 시대 자체가 낳은 비극의 뿌리를 깊게 들여다본다.
진실은 늘 가까이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보지 않았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듯 과거를 향해 돌아가고,
과거는 다시 현재의 목을 조용히 붙잡는다.
검사들은 수십 년간 반복된 사건의 구조 속에서 놀랍도록 유사한 흔적을 발견한다.
같은 장소, 같은 패턴,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종류의 무기.
이 지점에서 시리즈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증언과 기억, 그리고 왜곡된 시선이 얽혀 만들어낸 하나의 미궁으로 변한다.
스테파노는 자신의 죄책감, 두려움, 그리고 지켜야 했던 아들 때문에 결국 잘못된 길을 선택한다.
그의 입에서는 진실이 나오기도 하고, 상처가 나오기도 한다.
그가 말하는 모든 문장은 진실의 조각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진실에서 멀어지는 그림자처럼 보인다.
이 작품이 흡입력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모호함 때문이다.
어느 누구의 말도 완전히 믿을 수 없고, 어느 장면도 확신을 주지 않는다.
검사들은 서로 다른 조각들을 모으며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속을 걷고,
시청자는 그 미로의 벽면에 스치듯 새겨진 시대의 편견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바르바라의 삶에 드리워진 가부장적 압력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굴레’였음이 점차 드러난다.
그녀의 선택은 남성 중심의 사회가 허락한 틈바구니에서 탄생한 외침 같고,
그 외침은 결국 비극이라는 방향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누구도 쉽게 악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모든 인물은 저마다의 상처를 품고 그 상처 때문에 왜곡된 선택을 이어간다.
악의의 실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모두가 조금씩 눈을 감았던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끝내 밝혀지지 않는 진범, 그리고 그 공백이 남긴 파문
이 작품의 진면목은 후반부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진범은 끝내 확정되지 않는다.
새로운 용의자가 등장하고, 새로운 진술이 등장하고,
그 진술을 반박하는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모든 증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이야기는 명확한 풀이라기보다 ‘부서진 진실의 조각’을 손에 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시리즈는 깊은 울림을 만든다.
사건의 진실이 모호한 채 끝나는 것은 허무함이 아니라,
‘그 시절의 법과 사회가 가지지 못했던 능력’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무책임했던 조사 방식, 왜곡된 시선, 편견에 찌든 판단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용히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연쇄 사건보다 더 끔찍했던 것은
진범이 아니라 ‘진실 앞에서 흔들렸던 수많은 사람들의 침묵’이었다.
이 시리즈는 범죄의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그 뒤에 남겨진 공백,
아무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침묵을 남겨둔다.
그 공백이야말로 시청자의 마음을 오래 붙잡는 진짜 힘이다.
마무리
피렌체의 괴물은 범죄를 다루면서도 범죄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시대가 만든 왜곡된 구조,
그 속에 갇힌 사람들의 두려움과 선택,
그리고 한없이 흔들리는 진실의 형체를 조용히 응시한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네 편의 작은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한 시대가 미처 다 감당하지 못한 슬픔과 침묵이 담겨 있다.
모든 화가 끝나도 마음속 어딘가가 오래 서늘하게 남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