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오브 블러드》는 인간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그 너머의 세계를 잔혹하게 파헤치는 공포 영화다. 실종된 여대생, 정체불명의 요양원,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몸에 새기는 한 남자, 그리고 "책"이 된 자의 운명. 이 작품은 공포를 시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죽은 자의 분노를 심리적으로 파고든다. 이 리뷰에서는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여, 그 속에 숨겨진 테마와 인간 본성에 대한 메시지를 분석해본다.
📖 1. ‘책이 된 사내’ – 피로 쓰인 죽은 자의 이야기
영화의 문은 미스터리한 대화로 시작된다. 한 남자가 말한다. “이 책은 수백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그 책의 이름은 바로 ‘북 오브 블러드’. 죽은 자들의 피로 쓰인 이야기, 몸 자체가 책이 된 존재. 이 기묘한 이야기의 실마리는 그렇게 풀린다.
주인공 제나는 대학에서 겪은 심각한 사건 이후 심리적 충격에 시달리며 약을 끊고 무작정 도시를 떠난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한적한 요양원 같은 집.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친절하면서도 섬뜩하다. 특히 ‘엘리’라는 여인은, 간호사 출신이라며 사람을 치료하듯 접근하고, 삶의 통제를 완벽하게 손에 쥐려 한다. 집 안의 정원은 아름답지만, 그 안에선 생명보다 순종이 우선이다.
엘리는 끊임없이 말한다. “고통은 우리가 없애줄게. 여기선 두려움도 없다.” 그녀의 말은 달콤하지만, 그 뒷면엔 억압과 세뇌가 숨겨져 있다. 정원에서 ‘잡초를 뽑는 것’처럼, 인간도 필요 없으면 제거된다는 냉소적인 철학이 담겨 있다.
시간이 흐르며 제나는 점점 자신의 감각이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환각, 불면, 이상한 기억의 조각들. 그러던 중,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따라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자신의 전 남자친구의 아버지. 그는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며 제나를 미행하고 있었고, 어떤 방식으로든 복수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공포는 ‘엘리의 집’에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 집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었다. 그곳은 죽은 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기록하기 위해 선택한 ‘통로’였다. 그리고 선택된 자가 바로 사이먼. 그는 자신의 몸에 수많은 귀신의 이야기를, 그들의 고통과 분노를, 살과 피로 새기며 책이 되었다.
🧠 2. 사이먼, 죽은 자들의 연필 – 진실인가 사기인가
사이먼이라는 인물은 처음에는 능청스러운 사기꾼처럼 보인다. 자신이 ‘영매’라고 말하지만, 그를 조사하던 교수는 그가 사기를 벌이고 있다고 확신한다.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초자연 실험들조차 조작이었으며, 증거들도 손쉽게 무너진다. 심지어 그는 “첫날 전기 끊긴 것도, 메시지도 내가 연출한 것”이라 고백한다. 이 모든 것이 단순한 퍼포먼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고백조차 완전한 진실인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사이먼은 자신이 조작했다고 말하면서도, 점점 진짜 귀신과 교감하는 듯한 증상을 보인다. 고통스러운 표정, 피로 가득 찬 몸, 그리고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능력. 과연 그는 정말 사기꾼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잠식된 존재였을까?
이 영화는 그 의문을 끝까지 풀지 않는다. 사이먼은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살점을 내주며, 등과 가슴에 피로 쓴 단어들을 새긴다. 그것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죽은 자들이 남긴 최후의 외침이다.
“책이란 단지 종이에 쓰인 문장이 아니다. 몸에 새겨진, 살아 있는 고통이다.” 사이먼이 말한 이 문장은 영화 전체를 아우른다. 그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중간에 위치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의 고통은 죽은 자들의 고통이고, 그의 존재는 그들의 증언이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초자연적 공포를 넘어서 심리적, 철학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과연 진실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인가?”, “죽은 자들의 이야기는 누구에 의해 전달되는가?”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신을 본다’는 말이 아니라, 세상에 남겨진 상처를 마주한다는 뜻이다.
🔥 3. 죽음의 경계에서 – 북스 오브 블러드가 던지는 최후의 질문
영화의 마지막은 겉보기에 익숙한 공포물의 결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훨씬 더 철학적인 울림을 남긴다. 사이먼은 마침내 완전한 ‘책’이 된다. 그는 도망칠 수 없는 숙명을 받아들이고,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 대사처럼,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책이고, 책이 당신을 보고 있다.” 우리는 단지 독자가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의 일부라는 것이다.
엘리의 집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은 단순히 미친 사람들의 연극이 아니다. 인간이 가진 가장 깊은 공포, ‘이해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결과다. 죽은 자들이 한 사람을 ‘책’으로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기억되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이먼은 그 기억의 육체가 된다.
그렇다면 제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녀는 단순한 피해자인가, 혹은 또 다른 ‘책’을 만들기 위한 희생양인가? 영화는 이에 대한 답을 명확히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나는 누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나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가?”
《북스 오브 블러드》는 단지 유령이나 피가 튀는 장면에 의존하는 공포물이 아니다.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자들이 망각 속에서 얼마나 쉽게 ‘죽은 자’를 소비하고, 때로는 잊어버리는지에 대한 냉정한 묘사이자, 기억의 무게에 관한 영화다.
마지막 장면, 사이먼의 눈동자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속삭인다.
“다음 이야기는…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