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직후 전 세계 82개국 박스오피스 1위를 휩쓴 화제작, 《발레리나(Ballerina, 2025)》.
존 윅 시리즈의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복수극이자, 아나 데 아르마스가 보여주는 우아하고 강렬한 액션의 진수.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없는 이 신작 액션 스릴러는 ‘잔혹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춤’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몰입감과 서늘한 감정선을 정리해 본다.

“춤처럼 흘러가는 복수” — 이브의 시작
영화는 평화롭던 한 가족의 일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당하며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들이 속한 집단은 ‘루스카 로마’, 고아를 납치해 킬러로 키우는 냉혈한 조직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소녀 이브는 그 조직에 끌려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이름과 운명을 부여받는다.
이 장면부터 영화는 섬세한 감정 묘사 대신 감각적인 훈련 장면으로 이행된다.
피와 땀, 피아노 선율 같은 사운드가 섞이며, 이브의 성장 서사가 발레의 리듬처럼 전개된다.
단 한 컷의 불필요한 대사도 없이, 그녀의 고통이 춤이 되고, 춤이 곧 살인이 된다.
이브가 처음으로 ‘킬러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의 눈빛은 완전히 변한다.
우아하지만 차가운, 그 대비가 영화의 첫 번째 미학이다.
“총 대신 춤을 춘다” — 루스카 로마의 그림자
성인이 된 이브는 냉혹한 조직의 정식 구성원이 된다.
첫 임무는 도시 한복판의 클럽 암살.
실탄조차 사용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그녀는 오직 움직임과 판단력으로만 목표를 제압한다.
이 장면은 ‘존 윅’ 시리즈의 냉철함을 계승하면서도, 여성적 우아함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날, 타깃의 팔에서 익숙한 흉터를 발견한다.
그 흉터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들의 표시였다.
그 순간부터 임무는 복수가 된다.
이브는 더 이상 명령을 따르는 살인병기가 아니라, 과거를 찾아 나서는 인간으로 변한다.
조직은 그녀를 배신자로 취급하지만, 이브는 멈추지 않는다.
“나의 춤은 이제 끝나지 않을 거야.”
그녀가 내뱉는 이 한마디는, 단순한 대사가 아닌 선언처럼 들린다.
복수의 불꽃이 이 영화의 리듬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춤” — 피날레의 순간
이브는 컬트 조직의 근거지를 찾아 나선다.
그곳은 겉으로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지만, 내부엔 킬러 양성소가 숨겨져 있었다.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집과 똑같은 오르골이 등장하면서, 그녀의 트라우마는 폭발한다.
그 순간, 영화는 잔혹한 리듬으로 달려간다.
화염방사기와 폭탄, 총격, 육탄전이 이어지는 클라이맥스 시퀀스는 ‘존 윅’보다도 감정적으로 뜨겁다.
결국 이브는 동생 엘라를 구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떠나야 할 운명임을 직감한다.
“춤은 끝났어. 하지만 무대는 남았어.”
이 대사와 함께 그녀의 실루엣이 불길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마치 불 속의 발레리나가 마지막 포즈를 취하는 듯한 장엄한 아름다움을 남긴다.
영화의 마지막, 짧은 장면 하나가 차기작을 예고한다.
존 윅과의 연결고리를 암시하며, 세계관이 더 확장될 것임을 예감케 한다.
관람 후기 — 액션의 미학, 복수의 춤사위
《발레리나》는 단순한 스핀오프가 아니다.
이 작품은 ‘존 윅의 철학’을 다른 시선으로 재해석한 영화다.
총격과 폭발 속에서도 감정의 곡선을 놓치지 않는 액션 시네마의 완성형에 가깝다.
특히 아나 데 아르마스는 냉철함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하며, ‘춤추는 킬러’라는 모순된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했다.
이 영화는 화려한 장면보다 인물의 내면에서 타오르는 복수의 불꽃에 집중한다.
피로 물든 발레슈즈, 불길 속에서 흔들리는 실루엣,
그 모든 장면이 한 폭의 그림처럼 남는다.
넷플릭스 어디에도 없는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본다는 건,
마치 잃어버린 예술의 원형을 직접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 반 동안 나는 숨을 쉬는 것도 잊고 있었다.
우아함과 잔혹함의 경계를 춤추는 영화. 그것이 바로 《발레리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