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넨데스: 구마의 기록》은 악령 들린 소녀를 구마하려는 신부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충격적인 오컬트 영화다. 논리적인 구마 과정을 담았지만, 잔인한 장면과 불편한 전개로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 구마 영화 팬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1. 과거의 죄, 다시 시작된 구마의 악몽
《메넨데스: 구마의 기록》은 신부 메넨데스의 죄책감과 트라우마로부터 시작되는 오컬트 영화다. 영화는 주인공 메넨데스가 악몽을 꾸며 시작된다. 술로 하루를 연명하는 그의 모습은 이미 평범한 신부와는 거리가 멀다. 바로 그가 과거 구마 의식 도중 어린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 죄로 복역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회로부터, 신으로부터 멀어진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오랜 친구 세바스가 나타나 자신의 딸 라켈이 악령에 사로잡혔다는 절박한 소식을 전한다. 세바스는 병원에도 가봤지만 해결되지 않자 마지막 수단으로 메넨데스를 찾아온 것이다. 이미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메넨데스는 두려움과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나 결국 세바스의 간절함에 못 이겨 매일 그녀의 얼굴을 보기로 약속하게 된다. 하지만 그날 밤, 메넨데스는 또 다시 악몽에 시달린다. 그는 십자가를 새기고 성수를 뿌리며 자신을 다잡으려 하지만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세바스의 협박 섞인 요청에 메넨데스는 라켈과 한 집에서 지내며 본격적으로 구마 의식을 시작하게 된다. 라켈은 첫 만남부터 이상했다. 옷장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본다며 공포에 떨고, 급기야 폭력적인 행동까지 보인다. 그녀가 정말 악령에 들린 것인지, 아니면 심리적인 문제인지 혼란스러운 상황. 메넨데스는 직접 그녀를 돌보기 시작하며 점점 깊은 혼란에 빠진다. 라켈은 때때로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곧이어 낯선 존재가 그녀 안에 있는 듯 괴성을 지르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전기 충격기를 사용하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메넨데스 자신이 다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진다. 구마 의식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삐걱대기 시작했고, 메넨데스 역시 자신의 과거 죄책감과 트라우마 때문에 점점 정신적으로 무너져 간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구마 영화들과 다르게 주인공이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신부가 아니라, 오히려 의심받고 실패한 신부라는 점에서 색다르다. 그래서 관객은 끝없이 질문하게 된다. ‘정말 라켈에게 악마가 깃든 것일까? 혹은 모두 착각일까?’ 이 긴장감이 영화 내내 이어지며 불편함과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전통적인 구마 영화의 익숙함을 깨뜨리는, 그래서 더 섬뜩한 시작이다.
2. 논리적 구마 vs 악마의 유혹 – 처절한 대결
《메넨데스: 구마의 기록》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논리적 구마’라는 설정이다. 기존 오컬트 영화에서 구마란 무조건적인 믿음과 신성한 기도로 악령을 내쫓는 과정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전개를 거부한다. 메넨데스는 과거의 실패 경험 때문에 무조건적인 믿음을 버리고 논리와 계획에 기반한 구마 방식을 선택한다. 그는 구마를 위해 라켈을 지하실에 가두고, 철저하게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다. 마치 의학적 치료처럼 구마를 준비하는 모습이 색다르다. 하지만 그런 준비에도 불구하고 라켈에게 깃든 악령은 메넨데스를 농락한다. 영화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악마는 점점 본색을 드러낸다. 특히 라켈이 자신의 매력을 이용해 메넨데스를 유혹하는 장면은 구마 영화의 전형적인 ‘신부의 시험’ 장면을 재현하면서도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신부가 금기시하는 욕망, 과거의 죄책감, 믿음의 흔들림을 모두 이용하는 악마의 교묘한 술수는 관객으로 하여금 불편함마저 느끼게 한다. 한편, 세바스 역시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딸이 점점 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정말 이게 필요한 과정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갈등이 생기고, 세바스는 급기야 딸의 편에 서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악마는 본색을 드러낸다. 라켈은 아버지와 메넨데스를 기습하고, 두 사람은 의자에 묶인 채 무력하게 끌려다닌다. 영화는 이 지점부터 본격적으로 심리적 압박감을 높인다. 탈출과 재구마가 반복되고, 악령에 사로잡힌 라켈의 모습은 점점 더 괴기스럽고 잔혹해진다. 물리적인 충돌과 구마의 실패가 이어지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지고, 관객 또한 ‘과연 구마에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영화가 다른 오컬트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실패와 불신, 인간적인 약함을 전면에 드러내면서 더 현실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것이다. 결국 메넨데스와 세바스는 마지막 힘을 모아 라켈을 구마하려 시도하게 되고, 이 싸움의 끝은 예측할 수 없는 긴장으로 치닫는다.
3. 구마의 끝, 남겨진 상처와 씁쓸한 여운
《메넨데스: 구마의 기록》의 결말은 충격적이면서도 찝찝한 여운을 남긴다. 격렬한 구마 끝에 메넨데스와 세바스는 결국 악마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두 사람 모두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무엇보다 구마의 결과가 전형적인 ‘승리’가 아니라는 점이 영화의 큰 특징이다. 구마가 성공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폭력성과 인간적인 약함은 오히려 신앙 자체에 대한 의문을 남기게 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 두 사람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 표정엔 전혀 평온함이 없다. 오히려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이 남아 있는 듯한 불길함이 감돈다. 악령이 떠난 뒤에도 라켈에게 남은 상처, 메넨데스의 죄책감, 세바스의 의심 – 이 모든 것이 영화 내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말 우리는 악령을 몰아낸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악몽의 시작에 불과한가?”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영화가 악령의 존재를 완전히 확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명 라켈의 행동은 비정상적이었고,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보였지만 – 과연 그것이 진짜 악령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인간 내면의 광기였는지 모호하게 처리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러한 연출은 기존 오컬트 영화 팬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런 애매함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큰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영화의 전개가 다소 늘어지고, 일부 구마 장면의 잔인함이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특히 논리적 구마라는 설정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후반부엔 육체적인 폭력과 절규로 마무리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메넨데스: 구마의 기록》은 전형적이지 않은 구마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뻔한 구마 성공으로 끝나는 영화가 아닌, 인간 내면의 죄책감과 믿음의 흔들림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 완벽하진 않지만 구마 영화 팬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도전적인 시도였다. 신앙과 불신, 구원과 절망이 혼재하는 가운데 영화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악마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