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박찬욱 감독이 강력 추천했다는 괴물 같은 몰입도의 스릴러. 한순간의 침묵조차 허락하지 않는 이 영화 **〈난센스〉**는 사람의 마음 깊숙한 균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냉정한 손해사정사 유나, 그리고 사람의 슬픔을 읽어낸다는 무명 코미디언 순규. 두 사람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진실과 거짓, 치유와 함정의 기묘한 교차가 서서히 숨통을 조여 온다. 관객은 마치 눈앞에서 현실이 비틀리는 듯한 착각 속으로 끌려들며,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믿어온 모든 확신을 의심하게 된다.

절단된 진실의 첫 장면, 차갑게 열리는 사건의 문
이 영화는 처음부터 이상하리만큼 서늘하다.
낡은 프레스 기계 앞, 유나는 운동화 끈을 조여 매며 조용히 현실을 직시한다. 그녀가 들이민 것은 손가락 뼈가 으스러진 ‘증거’. 말도, 감정도, 동정도 없다. 있는 그대로를 꺼내 보이며 “이건 사고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관객은 그녀의 세계가 얼마나 냉정한지 깨닫게 된다.
유나의 직업은 손해사정사.
사람의 죽음과 사고를 숫자로 매기고, 사실인지 거짓인지 가려내는 일을 한다. 그녀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다. 업무의 냉혹함이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되고 깊은 ‘무감정’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사무실에서 그녀는 ‘해결사’라 불리지만, 그 칭찬 속엔 미묘한 불편함이 섞여 있다.
너무 차갑다, 너무 감정이 없다, 너무 정확하다.
그들은 유나를 칭찬하면서도 경계한다.
그리고 그 경계는, 영화의 모든 비극이 열리는 첫 금이 된다.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고 사라진 신입 보경의 일을 대신 맡아 달라는 부탁이 들어온다. 유나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인센티브라는 유혹 앞에서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10억이 걸린 의문의 사망 사건—박정수, 저수지에서 죽은 남자의 이야기—가 그녀 앞에 놓인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숨이 막힐 정도로 치밀하게 조여들기 시작한다.
웃음을 건네는 남자, 그리고 기묘하게 뒤틀린 따스함
보험금 수익자 순규를 만나는 장면은 묘하게 불안하면서도 따뜻하다.
이 남자는 무명 코미디언.
사람의 마음을 보는 법을 알고, 작은 말 한마디로 상처를 건드리듯 위로한다. 그는 능청스러움 아래에 이상할 만큼 날카로운 관찰력을 숨기고 있다.
유나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읽어내는 눈.
어울리지 않는 구두와 운동화, 감정을 숨기고 살아온 사람의 특유의 굳은 표정, 그리고 말끝에 흘러나오는 미세한 고독.
그는 유나를 바라보면서도 마치 그녀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 친절함은 오래 지나지 않아 다른 빛깔로 변해간다.
사고 현장을 확인하던 유나의 눈앞에 우연처럼 등장한 그의 차.
그리고 그녀를 향해 칼을 들고 접근하던 여인—최수진.
순규는 놀라며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 순간부터 관객은 흔들린다.
이 남자는 피해자인가, 아니면 범인인가?
그의 배려와 따뜻함은 진심인가, 혹은 치밀한 계산인가?
유나는 조용히 자료를 모으고, 끝내 순규의 이름이 적힌 오래된 보험금 청구 기록들을 발견한다. 그것은 한두 장이 아니라, 수십 장에 달하는 묵직한 과거.
그가 늘 “사람을 웃게 만드는 코미디언”이었다는 말은 사실의 절반일 뿐이었다.
심연을 들여다본 뒤, 진실은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유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오래 누적된 고통이 있다.
병실에서 희미하게 숨을 이어가는 아버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던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유나는 그를 버리지 못한다.
그녀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냉정하게 살아남았던 이유가 모두 그곳에 묶여 있다.
순규는 그 마음의 틈을 정확히 찌른다.
“꿋꿋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마음에 구멍이 있어요.”
그 말은 유나에게서 오래 붙들어왔던 갑옷을 벗기는 힘을 가진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영화는 칼날 같은 반전을 들이민다.
최수진이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
그리고 그녀의 보험금 수익자가 최근에 순규로 변경되었다는 사실.
형사들의 의심.
유나가 손에 쥔 수십 장의 보험 기록.
그 모든 퍼즐이, 이제야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낸다.
‘사람의 마음을 치료한다’고 말하던 남자.
웃음을 건넨다는 이유로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남자.
그러나 어쩌면 그는, 마음의 구멍이 아니라 그 구멍 속 어둠을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유나는 마지막까지도 그를 완전히 믿지도, 완전히 의심하지도 못한다.
그 모호함이 이 영화의 가장 잔인한 힘이다.
관객 역시 자신이 본 장면들을 되짚으며 계속 질문하게 된다.
그는 위로였는가, 아니면 함정이었는가.
도와준 것인가, 이용한 것인가.
진실은 그녀를 살린 것인가, 파괴한 것인가.
영화는 명확한 해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관객의 마음속에 또 하나의 빈 공간을 남긴 채, 조용히 막을 내린다.
마무리
〈넌센스〉는 감정이 죽어 있던 한 여자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끌려가며, 동시에 그 사람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게 되는 심리적 여정을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이 추천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영화는 시종일관 숨을 죄어오며 관객을 흔든다.
스릴러이면서 멜로드라마 같고, 심리극이면서도 범죄의 냄새가 짙다.
2025년 11월, 이 영화를 놓친다면 그 자체가 난센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