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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hback' 2006

by 영화보자 2025.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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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영화 *터치 오브 라이트(원제: Cashback)*는 한 남자의 상실, 불면증, 그리고 예술적 욕망을 시간 멈추는 능력이라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수작입니다. 단순히 에로틱한 판타지를 그린 작품으로 보일 수 있으나, 영화는 오히려 시간과 예술, 사랑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합니다. 철저히 감성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매우 현실적인 시선으로 삶을 관조하는 이 영화는 단순한 판타지 그 이상입니다.

영화의 장면들

1. 실연과 불면, 그리고 ‘시간 정지’ 능력의 시작

영화의 주인공 벤은 평범한 미대생이다. 그러나 여자친구에게 차이면서 그는 극심한 실연에 빠지고, 이내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며칠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을 새우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중, 동네 슈퍼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그곳은 말 그대로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사장부터 동료들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무료한 시간을 견디고 있었고, 벤도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그러던 중, 벤은 어느 날 자신이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능력을 갖게 되었음을 자각한다. 정확히는 그가 이토록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모든 세상이 멈춰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착각’은 단지 상상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주변 사람들의 시간을 멈추고 자신만이 움직일 수 있는 현실을 체험하게 된다.

이 초현실적인 능력은 벤에게 위안을 준다. 그리고 그는 이 시간을 활용해 사람들의 고요한 일상 속 모습을 스케치하며 미대생으로서의 예술적 본능을 펼쳐나간다. 특히, 슈퍼마켓에 들른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고요한 순간에 포착하고, 그들을 캔버스 위에 담기 시작한다. 다소 선정적인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이 장면들이 단순한 성적 환상이 아닌 ‘정지된 순간 속 아름다움의 예술적 탐구’로 묘사된다는 점이 인상 깊다.

2. ‘예술’과 ‘사랑’ 사이, 멈춘 시간 속 흐르는 감정

시간을 멈춘 공간 속에서 벤은 정적인 세상을 감상하고, 그 안에서 마치 신이 된 듯한 초월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감정이 무조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외롭고, 사람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한 ‘정지된 세계’에 있다는 사실이 점차 그를 고립시킨다.

그때 나타난 인물이 바로 동료 직원 샤론이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의 그녀는 처음에는 벤에게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지만, 점차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고 그림 모델이 되어주며 벤과 가까워진다. 벤은 샤론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이 감정은 단순한 예술적 영감에서 출발해 점차 사랑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이 둘의 관계를 시험한다. 벤은 실수로 샤론의 오해를 사게 되고, 그녀는 그가 여전히 전 여친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해 그를 멀리하게 된다. 이 장면은 매우 현실적인 감정선을 반영한다. 아무리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도, 감정이라는 영역에서는 여전히 서툴고, 실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벤은 자신의 시간을 다시 흘러가게 만드는 용기를 낸다. 그는 그림 전시회를 통해 샤론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곳에서 샤론은 멈춰진 시간 속 그녀의 모습들을 스케치한 벤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고, 비로소 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3. ‘Cashback’ – 시간을 돌려받는다는 의미

이 영화의 제목 Cashback은 단순한 슈퍼마켓 계산 용어만이 아니다. ‘되돌려받다’, ‘되찾다’는 의미처럼, 이 영화는 벤이 잃어버린 감정, 시간을 되찾는 여정을 그린다. 단지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며, 멈춘 순간 속에서 진짜 살아 있는 감정을 어떻게 되찾는가에 있다.

벤이 시간을 멈춘 동안 관찰한 것들은 단지 누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나약한 순간이자, 동시에 가장 솔직한 순간이다. 그는 사람들의 표정, 자세, 행동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낸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다시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잠을 잔다. 무려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숙면을 취하며, 벤은 다시 현실과 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이 되었음을 확인한다.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를 오해했던 샤론에게 진심이 전달되었을 때, 그는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Cashback은 미묘한 유머, 에로틱한 감성, 그리고 예술과 사랑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한 작품이다. 이 영화가 단순한 성적 판타지로 오해받기엔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너무나 명료하고 강렬하다. 그것은 바로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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